20여 년 가까이 지내던 조직을 떠나 조직문화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조직에서 일을 하며 생경한 사람들과 생경한 관행들에 적응하려 애를 써 온지 벌써 석 달이 다 되어간다.
왕복 80분이라는 출퇴근길을 운전하며 길에 버리는 시간이 아까워 우연하게 찾은 오디오북으로 ‘야성의 부름(The call of the wild)’이라는 소설을 듣게 되었다. 성우의 중후하고 몰입도 높은 목소리와 스토리에 빠져 3번을 듣고, 책까지 구해 읽었다.
아마도 알래스카로 썰매를 끌기 위해 헐값에 팔린 주인공인 늑대개 ‘벅’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나 자신을 동일시하며 들었기에 에피소드 하나하나에서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
‘야성의 부름’은 잭 런던이 1897년 클론다이크 골드러시에 참가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이다. 잭 런던은 소설에 자신이 흠모했던 니체의 ‘초인 사상’을 곳곳에 스미도록 글을 썼다. ‘벅’이 적응하려고 애쓰는 차갑고 무서운 알래스카는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 현재와 같은 미증유의 시대와 닮아있다. 이런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성과 합리성보다 인간 본연의 야성과 창의성, 상상력, 소통 능력, 처세술이라는 초인적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어려움 속에서 교훈을 배우고 자신을 단련하고 시시각각 찾아오는 위험 속에서도 빠른 속도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학습민첩성을 강조한다.
함께 실린 단편 ‘불을 지피다’에서는 학습하지 않는 자가 혹독한 환경에서 어떻게 죽어가는지에 대한 처절한 묘사가 이어져 잠시 나태했던 나 자신을 각성하게 한다.
재미있는 것은 고도로 기술이 발전하는 현재와 같은 시대에도 정작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 본연의 야성과 상상력, 그리고 소통 능력이라는 사실이다. 즉, 1800년대 후반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라는 시각은 항상 진보의 순간을 거듭하고 있기에 1800년대 사람들이 느꼈던 진보의 순간과 현재 우리가 느끼고 있는 진보의 순간의 생경함은 다르지 않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 문명 속에서 더욱더 빛나는 ‘야성의 가치’를 보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