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혹은 퇴직의 사유 (1)
윤영 작가님을 만났다. 퍼블리셔스 테이블 행사장의 '우아한 가난뱅이' 부스에서. 아니, 만났다기보다 내가 찾아간 것이 바른 표현이다. 나는 윤영 작가님 팬이다. 그녀의 책을 독립서점에서 만난 것인지, 교사 휴직 혹은 퇴직을 검색하다 알게 된 것인지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그저 <우아한 가난뱅이>라는 책 제목에 이끌렸고, 제목 그대로의 삶을 사는 그녀가 멋져 보여 팬이 됐다. 책을 읽은 후엔 그녀의 이야기에 푹 빠져서, 블로그 이웃 추가를 하고 새 글이 뜰 때마다 놓치지 않고 보고 있다.
그녀의 작가 소개는 이러하다. "중등 과학교사로 간신히 20년을 채우고 퇴직했다. 할 수 있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한다. 한발 먼저 일을 그만둔 남편과 한 달 150만 원으로 생활하며 고양이랑 노는 중이다."
그녀는 과학교사로 재직하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녀의 남편은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 연필과 음반을 수집했다. 결과만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공부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고, 직장에서 마음의 부대낌이 심해 여러 해 몸이 아프기도 했다. 그러다 남편이 먼저 일을 그만두고, 그녀가 뒤따라 퇴직한다. <우아한 가난뱅이>는 두 사람의 은퇴 준비 기간 3년, 은퇴 후 생활 1년을 담은 책이다. 그들은 말한다. 이 책은 돈이 많아서 은퇴한 이야기가 아니라, 적은 돈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고.
윤영 작가님은 내가 들고 간 <우아한 가난뱅이> 모서리가 빼곡히 접힌 것을 보며 놀라셨다. 그리고 책 표지를 넘겨 사인을 해주셨다.
"혜정 님의 평화를 빕니다. 윤영."
나는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힌 질문이다. 평화학을 공부하고, 비폭력 대화, 회복적 정의를 알아가면서 나는 세상이 힘들어졌다. 폭력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고 할까. 나의 입과 머리, 손과 발, 시선.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세상은 왜 이리 폭력적인지.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면서 매일 밤 울었다. 이상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아무것도 해하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는 식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학교에 가는 것도 힘들어졌다. 워낙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기에, 겉으론 잘 지냈지만 속은 곪아갔다. 비민주적인 학교 문화,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폭력적인 언어(예를 들면 '애자'나 패드립 같은), 아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소외와 갈등, 아이들의 고난과 슬픔. 그 모든 것들이 이전에는 수치 1의 고통으로 느껴졌다면, 이제는 수치 10의 고통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무리에서 소외되 고립감을 느끼는 아이, 마음의 병으로 자살 시도와 등교 거부가 반복되는 아이, 가난하고 폭력적인 부모가 싫어 수도 없이 가출하는 아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며 모든 걸 포기한 무기력한 아이... 아픈 아이와 상담을 하고 나면, 공감의 수준을 넘어 무력감, 분노, 수치심, 슬픔 같은 감정이 전이돼버리곤 했다. 사람들은 학교와 학교 밖, 선을 긋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하루하루는 지나갔다. 매 순간이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며, 우리의 하루는 하나의 상황과 감정에 지배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즐겁게 학교에 다니고, 그 아이들의 미소와 애정 덕에 학교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열심히 준비해 간 수업이 잘 되고, 동료 선생님들과 나누는 대화 덕에 웃으며 하루가 마무리됐다. 그렇게 슬픔과 기쁨이 너울 치는 하루가 켜켜이 쌓여 15년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껍데기만 평화로운 그 하루를 온전히 평화로운 하루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니어도 학교는 돌아간다. 내가 아니어도 아이들은 자란다. 내가 해야 하는 몫은 최선을 다해 해냈다. 그러니 충분하다. 이제는 '교육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라는 무거운 사명감 말고, '나의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려면 '나의 평화란 무엇인가'부터 정의를 내려야했다. 앞으로 살아갈 나의 인생, 나의 평화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