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혹은 퇴직의 사유 (3)
10월 10일(목)
모르는 전화번호가 핸드폰에 찍혀 있었다. 평소라면 모른 채 하지만 이상한 촉이 왔다. 왠지 전화를 걸어야 할 것 같아 인터넷 검색 창에 전화번호 검색을 해보니, 마포구 어쩌고라는 게시물이 하나 떴다. 뭐지? 아! 어머나! 손이 떨렸다.
띠리리링-
“네, 한겨레 교육센터입니다.”
맞았다. 신청 당일 5시 땡! 하고 신청했지만 떨어졌던 한겨레 출판편집학교에 자리가 난 것이다. 아이들 입시지도를 하다 보면 ‘대기번호 몇 번’ 그 숫자에 울고 웃는데, 그 간절한 마음이 이제야 온전히 이해가 됐다. 15년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직장을 뒤로하고 글쓰기로 사람을 돕는 사람, 좋은 책을 만드는 출판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것이 어제 일이었다. 그런데 결심과 동시에 출판편집학교에서 연락이 온 것은, 나의 운명이 그리로 흐르고 있다는 무언의 목소리 같았다.
11월 1일(금)
화, 수, 목, 금. 벽 보고 점심을 먹었다. 밥 먹고 물 마시고, 커피 마시고, 양치할 때 빼곤 입을 열지 않았다.
‘이런! 내가 생각한 그림이 아니잖아.’
휴직하고 집에 있으면서 사람들이 더 좋아졌다. 원래도 사람을 좋아하지만, 하루종일 혼자 있으니 자신과의 대화는 이제 그만 하고 싶었다. 이제 주 4일 출판편집학교를 다닌다니, 왕복 4시간 이동의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본다는 생각에 신나 있었다. 정확히는 입 털(?) 생각에 신난 거지만.
‘동기들하고 으쌰으쌰 수업도 듣고, 맛집 찾아다니며 밥 먹고, 팀 과제도 같이 하겠지?’
아니었다. 동기들은 나 보다 열 살 이상 어려서 동기라기보다 제자를 보는 것 같았고, 맛집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개별 과제뿐이었다. 칠판만 보며 수업 듣고, 벽만 보며 밥을 먹었다.
'흑! 내가 생각한 그림이 아니잖아!'
그러다가 오늘, 강사님의 제안으로 방과 후 다과회(?)를 했다. 책상을 둥그렇게 모으고 마주 앉아 있으려니, 학교에서 아이들과 학급 회식하던 추억이 떠올랐다. 피자나 치킨을 시키고 각자의 잔에 탄산음료를 담아, 내가 “1반을!”이라고 크게 선창 하면 아이들이 “위하여~~!!! 유후후훗!!!! 꺄오로롤” 소리 지르고 웃음 파티를 했었는데.
아이들도 이런 재미였나 보다 생각하며 오늘의 까까 파티를 즐겨 보기로 했다. 으른들의 모임이니 음료는 맥주. 이름, 나이, 지역 등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색했다. 그래도 좋았다. 미래 출판인들의 모임이라니! 게다가 젊은이들이 쓰는 신조어도 배웠다.
“다들 몇트에 되셨어요? 1트에 되신 분 있나요?”
“전 4트만에 됐어요.”
“전 2트요.”
“전 3트.”
오잉? 무슨 말일까? 느낌상 문맥은 알겠는데.
“저 죄송합니다만, 제가 젊은이들 용어를 잘 몰라서 그러는데 트가 뭐예요?”
“아! 트라이(try)요. 몇 번 시도해서 합격했는지.”
아! 이제 이해했다. 그리고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젊은이들의 신조어를 배워서? 아니다. 내가 바로 1트에 된 소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기로 붙었지만) 그 자리에 함께 한 사람 중 1트(배웠다고 써먹기)에 신청된 사람은 나를 포함해 둘 뿐이었다. 심지어 그분도 대기로 붙었다고 했다. 하루 전에 연락이 와서 운명이라 생각하고 냉큼 물었다고. 다른 분들은 여러 차례 대기만 하기도 했고, 4트만에 성공한 분도 있었다.
“이렇게 힘들 일인가요?”
다들 서로의 트라이를 들으며, 먹고살기 힘들다 말하곤 웃었다. 힘들다 말하지만 다들 미소 띤 얼굴이다.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는 중이니까.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대학원생, 국문과재학생, 간호사 퇴직자, 대학교직원 퇴직자, 코딩 전문가, 디자인 전공생. 그리고 윤리교사인 나까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좋아하는 일을 위해 모인 자리는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책상 위에 깔린 A4용지와 그 위에 수북이 담긴 과자. 그리고 캔맥주 하나. 결이 비슷한 사람들과의 대화. 이거면 충분하다. 나의 평화로움을 위해선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