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의원면직을 결정했다
이제 정말 퇴사다. 결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15년간 교직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살아왔기에 힘든 결정이었다. 나조차 납득되지 않는 '떠날 이유'를 찾느라 오랫동안 머리가 아팠다. 불면증에 시달렸다. 입맛이 없고 소화도 잘 안 됐다. 머릿속에 생각이 가득 차서 배출되지 않으니 자주 두통이 생겼다. 그런데 어제 신랑의 얘기를 듣고, 신기하게도 몸과 마음이 편해졌다.
"퇴사는 축복이야.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퇴사한다는 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잖아. 그리고 누구나 퇴사를 하고 싶어 해. 그런데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있으니 실행으로 옮기긴 힘들지. 그런 면에서 바비는 축복받은 사람이야. 하고 싶은 일도 있고, 용기 있게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이고, 다들 응원해 주니까. 그런데 왜 우울해해? 퇴사는 축제야. 기쁜 일이야. 우리 새로운 시작을 위해 축제를 하자. 우리만의 파티."
신랑의 말을 듣고야 알았다. 나는 '끝'이라는 단어에 골몰해 있었구나. 끝의 뒤에 서있는 '시작'이라는 녀석을 보지 못하고 있었구나. 내가 선택한 끝이 시작을 위한 것이었음을 이제야 맘속 깊이 깨달았다.
언어의 힘이란 참 무섭다. 끝에 집중할 땐, 잃어버릴 것들만 생각했다. 아까워서 도저히 놓고 싶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느라 우울했다. 정말 멋졌던 우리 반, 사랑하는 제자들, 즐거웠던 수업, 열정적인 동료 교사들과의 연구 모임. 그렇게 좋은 것들을 떠나보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참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런데 시작을 생각하니, 마음이 가볍다. 굳었던 얼굴 근육이 풀리며 미소가 지어진다. 내가 쌓아온 것들은 앞으로의 길에 자양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경험은 내 안에 살아있다.
퇴사는 축제다. 내 인생에 가장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축제. 이 축제를 어떻게 하면 더 멋지게 즐길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마음가짐이면 충분하다. 그 순간부터 축제가 시작된다.
신랑과 나란히 이불 위에 엎드려 쿠팡앱과 네이버지도앱을 켰다. 까만 방안에 핸드폰 불빛이 비친 두 얼굴이 사뭇 진지하다. 검색어는 퇴사 파티, 퇴사 토퍼, 레터링 케이크, 파인다이닝, 해물 데판야끼 등이다. 고민만 길었지 갑작스러운 퇴사 결정에 깜짝 파티 같은 건 없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열심히 퇴사 파티를 준비한다.
(우연찮게도) 신랑이 반차를 쓴 날, 함께 사직서를 제출하러 가기로 했다. 사직서를 제출한 뒤엔 취향에 딱 맞는 곳에서 둘만의 파티를 할 것이다. 평소라면 쓰지 않을 거금을 쓸 것이고, 만취할 예정이다. 며칠 뒤엔 신랑 생일이다. 신랑 생일에 맞춰 크리스마스 때까지 여행을 하기로 했는데, 신랑에겐 미안하지만 나의 퇴직 기념 여행이 될 가능성이 크다. 뭐 어떤가. 신랑이 탄생한 날이고, 나도 새로운 시작을 하는 날이니 일타쌍피 아닌가. 판만 더 커지면 된다. 좋지 아니한가!
15년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나야 축하한다. 축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END & START
그동안 <교사에서 작가가 되었습니다>와 함께 해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처음 브런치북을 만들 땐 공저 출간 과정을 다루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공저 편집 과정에서 글감이 똑 떨어져, 휴직과 퇴사에 관한 글을 올렸지요. 글을 쓰는 사이 운영 중인 글쓰기 모임은 더 안정됐고, 공저 출간도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새로운 꿈을 위해 한겨레 출판편집학교에 다니며 바쁜 일상을 보내기도 했지요.
<교사에서 작가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참 이상해 보이는 제목입니다. 퇴사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휴직 기간이라기엔 민망할 정도로 참 바빴습니다. 실은 꿈을 실현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물론 아직 완성된 것은 없습니다. 시작이라고 부르기도 미약한 상태죠. 하지만 교사, 그 이후의 삶에 대한 그림이 추상화에서 세밀화로 변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새로운 출발을 결심했습니다.
앞으로 쓰게 될 글에선 퇴사 후 일상과 글쓰기 모임 운영자, 출판인으로서 성장해 가는 모습을 전하려 합니다. 앞으로도 쭈욱- 함께 해주세요. 스릉흠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