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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까만 오른발 Jan 24. 2022

노망주 축구 선수 육성기

운동을 좋아하는 부캐 생활


왜 축구를 좋아할까.     


  본업을 제외하고 내가 시간과 물질을 운동에 집중한다. 통상 ‘헬스’라고 부르는 중량 운동과 축구를 좋아한다. 축구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 헬스를 보조 운동으로 한다. 월·화·수요일에 헬스를 하고 목요일에 작은 축구라고 할 수 있는 ‘풋살’을 한다. 그 후 금·토요일에 휴식을 한 뒤 일요일에 축구를 한다. 일요일에는 더 구체적으로 축구에 집중한다.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 풀게임을 뛴다. 평균 활동량은 10km 정도다. 경기가 끝난 후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버거 세트 하나에 단품을 추가하거나 돈가스 정식에 메밀소바를 추가하는 등 고열량 점심을 포장하고 귀가를 한다. 그리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땀에 젖은 운동복을 세탁기에 돌린다. 그러면 거의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가 된다. 그때 밥상을 펴고 비닐봉지에 싸 온 점심 식사를 힘이 빠진 손가락으로 겨우 푼다. 냉동실에 얼려놓은 택배에 딸려온 얼음 팩을 샤워를 하고 난 수건에 돌돌 감아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에 깔아놓고 TV를 켠다. 그러면 캐스터가 “역동과 감동의 하나은행 케이리그 1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는 멘트로 케이리그의 시작을 연다. 그렇게 구단 버스에서 내린 선수들이 입장하는 장면부터 경기 시작을 알리는 킥오프를 하기 전까지 음식을 오물오물 씹으며 먹는다. 점심식사를 어느 정도 마무리하면 본격적인 축구 중계 경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아침 일찍부터 이리저리 운동장을 뛰어다니느라 지친 내 몸에서 수면가스가 뿜어져 나온다. 귀신같이 케이리그 중계가 시작하자마자 나는 침대도 아닌 바닥에 누워 종아리에 얼음 팩을 댄 채로 폼롤러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든다. 그렇게 약 100분을 자고 나면 경기는 어느새 끝이 나 있다. 오후 4~5시 정도에 잠을 깬 나는 그렇게 개운할 수 없다. 스트레스는 모두 날려버렸고 오전부터 혹사한 내 몸은 낮잠을 통해 회복이 된 걸 느낀다. 이로 인해 또렷해진 내 눈은 너무 맑은 정신을 대변한다. 그 사이 빨래는 다 됐고 유니폼을 베란다에 널어놓고 또 저녁을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주말 저녁을 보낸다. 혼자 사는 나의 주말 루틴은 이렇게 운동과 휴식을 반복한다. 다음 주 이 날 아침을 기다리며.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한다. 내 본캐의 삶, 직장인의 삶을 효율적이고 건강하고 밝게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운동을 제대로 해보려 투입하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직장인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직장인의 삶은 무기력하고 무능력하기 짝이 없다. 나의 역량을 보여주기 힘든 삶을 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이것마저 핑계라 생각하며 매월 통장에 찍히는 월급만을 바라며 살고 있다. 하지만 운동을 하는 삶에 있어서는 나에게 하등 이득이랄 게 없다. 30대에 들어서자 앞으로 건강이 가장 큰 나의 재산이라는 여러 선배의 조언을 듣는다. 나는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지 않는다. 건강해야 운동도 잘할 수 있기 때문에 건강에 관심을 가진다. 그렇다면 운동을 왜 하는 걸까. 내가 프로 선수도 아니고 업계 종사자도 아니다. 다만 동호회 활동과 나의 신체적 능력을 발휘하는 그 순간 자체에서 오는 희열 때문에 나의 부캐를 운동하는 나로 생각할 정도로 운동에 몰입한다. 비생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계획을 수행하는 보조적인 역할로 운동에 들이는 시간과 돈을 할애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활용할 수 있는 범위에서 초과한 범위를 할애하고 있다. 퇴근 후에 하루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를 헬스를 하고 집에 돌아와 씻자마자 지쳐 쓰러져 잠에 든다. 이상하게 하루 중에 가장 무기력한 시간이 근무시간이다. 나에게 월급을 주시는 분이 이 글을 보지 않으시기를 바라며 글을 적고 있다. 그리고 헬스나 축구를 시작하는 30분 후 정도에 내 정신과 눈빛과 모든 세포는 춤을 추기 시작한다.      



  헬스는 오로지 축구를 보조하기 위한 운동이다. 심미적인 목적이나 근비대, 건강은 생각하지 않는다. 코어를 중심으로 무게 이동을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근육을 활성화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딱 일반인 수준에서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다 보니 운동 능력을 극대화할 수 없다. 어느 정도 타협을 하고 운동을 하다 보니 뱃살이 없는 정도로 만족을 한다. 내 여건이 허락이 된다면 더욱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은 욕심이 든다. 운동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부상 예방과 회복, 영양, 물리치료까지 내가 지금 원초적으로 잘하고 싶은 부분에 관련한 부분을 더 잘하고 싶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변명 탓에 본캐를 보좌하는 부캐의 영역으로 나 자신을 한정하고 있다. 아주 오래된 때에 제3,4의 직업으로 운동과 관련한 직업을 준비 중이라고 나 자신을 위로한다. 천천히, 신중하게 새로운 항로를 탐구하고 찾아보자는 위로를 나 자신에게 건넨다. 창피한 얘기다. 나이가 서른이 넘은 지금에서야 내가 좋아하는 분야가 정녕 운동이었을까 뒤늦게 깨달은 지금 내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비록 내가 늦은 나이와 실현이 어려운 길을 찾고 있지만 우리의 평균 수명이 급격하게 늘어져 가는 만큼 내가 도전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지리라 믿는다. 본캐는 본캐대로, 부캐는 부캐대로, 부캐가 본캐를 잠식해도 새로운 탈피로 여길 수 있는 나의 지식적이고 신체적인 도야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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