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밤에 더 제정신 같아
날씨가 풀어지고 있으나 밤공기는 스산한 느낌이 들 정도로 춥다. 봄에 들어선 시간은 옷을 얇게 입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얇은 옷 사이로 파고드는 찬바람은 내 몸을 차갑게 감싼다. 한 밤중이지만 정신이 번쩍 든다. 혼자 가만히 앉아서 노래를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려 한다. 운동을 하기에는 혼자 생각하는 이 시간을 차분하게 보내고 싶다.
술 생각이 어떻게 나는 지 알아간다. 뭔가 건강해지는 기분인데 엄청 공허한 느낌이 든다. 입이 심심해지고 배가 고픈 건 아닌데 내 위장이 뭔가를 자꾸 갈망하는 느낌이 든다. 물을 아무리 마셔도 목마른 느낌이 든다. 알코올중독의 증상일까. 예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만 마셔도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는데 지금은 한 삼일 간격으로 그런 생각이 든다.
맥주를 짝으로 사봤다. 따로 매일 사러 가는 게 귀찮아서 병맥주를 박스 채로 사봤다. 12병이 들어 있었다. 나 혼자 마시면 하루에 2병 정도 마신다. 3일 간격으로 2병씩 마셔보니 몸이 붓는 느낌이 든다. 술은 몸에 좋지 않다는 걸 몸소 느낀다. 혼자 살면 좋은 게 나 혼자 집에서 하는 모든 행위가 집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누구에게 걸리지 않는 자유를 느낀다.
낮술을 마셔봤다. 쉬는 날 오전에 헬스를 하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넉넉한 점심을 먹으면서 영화를 보며 낮술을 혼자 시작해 본다. 병따개로 맥주를 따기 전에 내가 오후에 일정이 있는지 운전을 할 일이 있는지 잠깐 깊게 생각해 본다. 점검이 끝난 후에 시원하게 한 잔씩 컵에 따라 마신다. 밥 먹으면서 딱 1병을 먹고 다 치우고 난 뒤에 커피 대신 1병을 딴다. 다 마실 무렵에는 조금씩 잠이 쏟아진다. 그렇게 혼자 앉는 소파에 쓰러져 잠들고 서너 시간이 지나고 일어나면 이미 노을이 지고 있다.
그 이후에는 잠이 오지 않는다. 술이 깨는 느낌이 들면서 눈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낀다. 하루를 마감하는 느낌이 아닌 아침의 상쾌한 기운을 뒤늦게까지 이어가는 느낌이 든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고 나 혼자만의 생각과 걱정, 근심을 펼친다.
미리 써 놓은 이 글에 그런 기분을 더하니 잠깐 취한 것 같다. 요즘에는 술로 인한 부기를 좀 빼야 해서 안 마시고 있다. 밤에 또렷한 이 기분이 좋다. 온갖 생각과 고민으로 열을 받는 내 머리통을 밤에 부는 찬 바람이 식혀주는 느낌을 받는다. 알 수 없는 불안함에 초조해진 내 두 손에 땀이 맺힌다. 이 두 손을 차가운 유리창에 대고 있으면 식혀주는 느낌을 받는다.
혼자 있을 때 혼자 받는 위로로 나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