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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까만 오른발 Jul 17. 2022

취했을 때 내가 맨 정신일 때 나보다 인정이 좀 많아

내 술버릇을 한번 늘어놔보겠습니다.

  구 씨처럼 술을 마셔야 차분하고 더 섹시해진다면 몇 짝을 두고 마시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맥주 마시는 걸 좋아한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혼술도 종종 한다. 주로 일주일에 한 번은 꼬박 취하는 것 같다. 오랜만에 술 마시는 걸 좋아한다. 내 몸에 있는 모든 알코올을 모두 분해한 깨끗해진 내 몸을 다시 해치는 느낌이 좋다. 그래서 아주 오래 술을 안 먹었다가 오랜만에 삼키는 첫 모금을 정말 좋아한다. 그 첫 모금을 입안에 약 3초 정도 머금으면서 파괴되는 뇌세포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넨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파괴될 뇌세포와 체세포들인데 굳이 알코올을 들이부으면서 없애는 이유는 뭘까. 내 몸을 해치면서 느끼는 쾌감은 왜 생기는 걸까. 자세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 기분이 좋다. 그렇게 시작을 한다.


  맥주는 아무리 마셔도 잘 취하지 않는다. 딱 60% 정도 취한다. 더 이상 취하지는 않는다. 화장실만 자주 오갈 뿐이다.  딱 맥주만 그렇다. 소주와 양주는 입에 대지도 못한다. 소주는 한잔이라도 섞어마셨다가는 다음날 숙취로 고생을 한다. 여러 사람과 맥주만 같이 마시기는 어렵다. 내 주위에는 주로 소주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나처럼 맥주만 마시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소주와 맥주를 섞는 일명 '쏘맥'으로 절충해서 마신다. 그때부터 나는 마치 복어독을 제거하는 국가기술자격증이 없는 요리사가 만든 복어탕을 먹듯 위태위태한 기분으로 술자리에서 긴장을 한 채 쏘맥을 마신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술자리보다는 혼자 맥주를 마시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혼자 앉아서 맥주캔을 서너 개씩 까면서 헤드셋을 끼고 옛날 노래를 듣거나 영화를 본다. 요즘에는 '나의 해방 일지'를 n회차씩 돌려본다. 특히 술을 홀짝홀짝 마시면서 보면 마치 내가 구 씨가 된 것 같은 착각으로 드라마에 몰입한다. 원래 나는 술이 모자라면 다시 사러 가는 수고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 길로 침대에 철퍼덕 누워서 잠들고는 했다. 그런데 구 씨를 한번 따라 해보고 싶어서 구 씨가 술을 사러 가거나 술을 사서 들어오는 장면을 멈춰놓고 집 앞 편의점에 가서 맥주를 더 사 와서 들어오자마자 다시 드라마를 시작하고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한다.


  그렇게 구 씨처럼 나는 술을 계속 마시고 싶어 했던 이유는 뭘까.


  구 씨는 조용해지려고 술을 마신다고 한다. 나도 비슷한 것 같다. 술을 마시고 나면 내 생각의 우선순위가 정리가 된다. 나를 억누르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나를 멀쩡한 정신보다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할 수 없는 일과 하기 싫은 일을 먼저 치워내기가 편하다. 그렇게 한번 털어내면 내 욕심도 덜어낼 수 있다. 미련 없이 버릴 수 있다. 그러면 내가 어디까지 뭘 해야 하는지 하는 계획을 세우기가 좋다. 평소에는 나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지배하는데 술을 마시고 나면 내가 좀 더 뻔뻔해지는 것 같다.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시야를 부정적인 면에서 긍정적인 면으로 끌어내 준다. 


  하지만 이 기분은 알코올 때문에 잠시 드는 착각일 뿐. 자고 일어나면 술을 마시기 전보다 더 우울한 기분이 나를 감싼다. 크게 보면 술을 마시지 않는 게 내 정신과 육체에 가장 이로운 일이다. 술독에 빠져서 살지 않도록. 지금 정신 차리고 내 몸에 알코올 없이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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