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이야기 2
어제는 비가 많이 왔었다. 일요일 아침에 빗소리를 들으면서 눈을 뜨는 게 행복했다. 더 자고 싶었다. 축구 따위 공놀이 알아서 하라고 하고 에어컨만 쐬고 싶었다. 그러나 픽업을 약속한 아는 형과 약속이 생각났다. 겨우 유니폼을 챙겨 입고 축구화를 털레털레 들고 운동장에 나왔다.
어제는 중앙 미드필더에서 경기를 했다. '수비형' 중앙 미드필더. 상대편에 김천 상무 입대를 준비하는 20대 초반의 현역 선수가 있어서 그 선수를 전담 마크했어야 했다. 전담마크가 말이 되나. 소속을 밝힐 수 없는 현역 선수에, 한창 파릇파릇한 20대에, 무려 김천 상무 입대를 준비하는 엘리트 유망주였다. 그 선수에게 가까이 가서 '살살 부탁드립니다.~' 하니까 굳은 결의를 다진 표정으로 알았다고 했다.
나는 마치 90년대 후반 00년대 초반 이탈리아 명문 AC밀란의 전설적인 미드필더 '젠나로 가투소'에 빙의했다. 어차피 면도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느라 안 해서 위의 사진과 비슷하게 길렀다. 나는 이 선수를 좋아한다. 투지가 엄청나다. 거친 플레이로 상대팀의 에이스를 가만 두지 않는다. 물론 너무 거친 플레이 탓에 상대 선수에게 부상을 일으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 팀 선수라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악착같이 몸을 사리지 않는 태클과 영리한 패스로 당시 세계 최고인 AC밀란을 이끌었다.
현재는 은퇴를 하고 이탈리아 프로팀 감독으로 재직 중인데 그 성질을 선수들에게 어떻게 표현을 할까 궁금하다.
아무튼 나는 잔뜩 긴장을 한 채 그 선수가 공을 잡지 못하도록 악착같이 따라다녔다. 풋살 하는 동생들이 알려준 대로 고개를 계속 휘저으며 어디로 이 선수가 뛸지 파악했다. 이 선수는 나를 의식이라도 하고 있을까. 아닌 것 같다. 내가 붙어있어도 공을 잡으면 아주 편안하게 주변으로 툭툭 내줬다. 무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방심을 한 사이에 파파 박하고 튀어나간다. 한순간이다. 축구에 순발력이 이래서 필요하구나 느꼈다.
그 패턴을 내 나름 인식하면서 따라가려고 시도했다. 몇 번 따라 하다가 종아리에 쥐가 올라오고 말았다.
세 번째 쿼터에서 나는 축구화를 벗을 수밖에 없었다. 각 30분 두 쿼터동안 죽어라 따라다닌 탓에 체력이 고갈되었다. 조금만 걸어도 왼쪽 종아리에 쥐가 올라왔다. 경기장에 나와 그 선수의 플레이를 보니 그렇게 쉬워 보일 수 없다. 동작에 군더더기가 전혀 없다. 감탄만 나왔다. 이런 맛에 케이리그를 보러 가기도 한다. 축구 선수들의 숙련된 동작과 패스 길을 보며 감탄한다. 시원시원한 볼 줄기에 더위가 가신다.
축구를 하면 할수록 공격보다는 수비에 재미가 들린다. 나보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과 경합하는 재미가 있다. 내가 부족한 걸 깨닫고 더 잘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내가 해볼 만하다 느낀 선수가 어쭙잖은 잔기술로 나를 농락하려들면 힘으로 제압하는 재미가 있다. 다음 동작의 선택권은 공을 가진 공격수에게 있지만 파울을 할 수 있는 선택권은 수비하는 역할에 있다. 경고를 받지 않을 만한 경합 자체는 축구를 하는 재미를 더한다. 그리고 내가 직접 수비에 성공해서 역습을 전개하는 과정도 재밌다.
이런 식으로 매주 축구를 할 때마다 생각나는 전설적인 선수들을 주제로 글을 쓰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내가 해외축구에 입문하기 시작했던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세계 축구 트렌드는 선수 개개인의 특성을 세운 전략이 유행했다. 그래서 개성이 강한 선수들이 많았다. 아주 미천한 나의 경기력을 이런 개성 가득한 선수들의 특성에 비교한다면 글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