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지 않을 정도로 상대를 눌러줄 출사표
어제 풋살팀 회원에게 전화가 왔다. 서로 카톡만 가끔 하는 사이라 대낮에 목소리를 주고받기가 어색했다.
힘겹게 대화를 끝내고 전화를 끊으니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내용인즉슨 회원의 거래처 회사에 풋살 동아리가 있다고 전해 듣자 회원 본인도 풋살 동호회를 한다며 총무인 내 번호를 줘도 되냐는 거였다. 동생과 통화를 끊고 나니 바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서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매치를 덜컥 잡아버렸다. 회장 아저씨에게 얘기하니 한번 하자고 하더라. 다만 코로나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경기장에 와서 모두 자가 키트 검사를 하고 운동을 하자고 하셨다. 안전과 생업이 제일 먼저 고려하는 것이 생활 축구의 본질이다. 회장님께서는 안전을 보장한 상태에서 다치지 말고 친선전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이후 감독 아저씨에게 전화를 했다. 감독 아저씨는 열정맨이다. 친선전 얘기를 꺼내자마자 목소리 톤이 올라가서 선발 명단을 꾸려보겠다고 했다. 나는 감독 아저씨에게 타 팀이랑 매치하면 나는 눈빛부터 달라지니까 원만한 진행을 위해서 경기에 빼 달라고 했다.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몸은 괜찮은데 지역 사회에서 마주칠지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저같이 투지 넘치고 피지컬 괜찮고 요즘 공도 잘 굴리는 사람은 빼도 된다고 극구 몇 번을 더 얘기하며 완곡한 거절과 청탁을 동시에 하는 충청도 바이브로 출전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다른 팀과 친선전을 하기 전에 마음 가짐은 일단 나보다 실력이 모두 나은 사람이라 여기고 몸에 잔뜩 긴장을 준다. 서로 반대 진영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척하면서 서로를 의식한다. 서당개 3년 짓도 10년이 넘은 지라 공을 가볍게 주고받는 것만 봐도 딱 사이즈가 나온다. 그리고 배가 얼마나 나왔는지. 관상, 운동복을 입은 스타일 등등 축구 외적인 요소를 적용해 소거법으로 상대방을 내 머릿속에서 쳐낸다. 그렇게 한 두 명 정도 그 팀의 에이스가 보인다.
'그래, 오늘은 너다.'
이렇게 한 두 사람 정도를 내 눈에 찍어놓고 경기가 시작되면 수비 시에 그 사람을 전담 마크한다. 나도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볼까 긴장한 채로 몸을 푼다. 이때 헬스로 다져놓은 풍선 근육이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저녁에 있을 매치를 앞두고 우리 팀 유니폼은 안 챙기고 헬스인의 상징 언더아머 검은색 티를 챙겼다. 거기에 하체 운동을 할 때 입는 짧은 반바지를 챙겼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우리 팀 유니폼은 답답하다는 핑계를 대고 입을 생각이다. 한두 달 전부터 내 운동 선배는 김종국 유튜브에 푹 빠져서 상체 운동 루틴만 돌렸다. 따라갈 수밖에 없는 나는 지금 팔이 내가 운동을 시작한 이래 제일 두껍다. 이 장점을 이용해 볼 생각이다. 아, 김종국을 뮤즈로 생각하는 내 운동 선배가 위에 언급한 감독 아저씨다. 우리 팀은 피지컬이 팀컬러다.
오늘 저녁에 있을 매치를 앞두고 아침부터 샤워를 하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속옷은 언더아머 쫄쫄이 반바지를 입고 정강이 반 정도 올라오는 축구 양말을 신고 출근을 한다.
딱 서로 다치지 않는 선에서 상대방을 압도해버릴 만한 뭔가를 해보고 싶다.
박지성 현 전북 현대 어드바이저가 현역 선수 시절에 중앙 미드필더에서 경기에 출전할 때가 있었다.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이 중앙 미드필더 박지성에게 기대한 역할은 상대편 에이스의 원천 봉쇄다. 상대편 선수 뒤에 바짝 붙어 90분 경기 중에 공을 잡지도 못하게 하는 악착같은 수비력. 하지만 파울조차 잘 범하지 않는 선에서 아주 영리하고 끈질기게 상대편 에이스를 묶어둔다. 심지어 2008-2009 유럽 챔피언스리고 결승전에서 만난 최전성기 바르셀로나의 메시를 그렇게 전반 45분 동안 최선의 노력을 쥐어짜서 막았다. 이후 후반 시작과 동시에 유리몸의 대명사 오웬 하그리브스와 교체되며 나오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실점을 하고 퍼거슨 감독을 턱이 부서질 정도로 껌을 씹으며 주먹을 불끈 쥐고 부들부들 떨며 분하는 장면이 지금도 회자된다.
오늘은 내가 박지성이 되어 보겠다.
다음에 쓸 글에는 오늘 있을 경기에 대한 후기를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