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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까만 오른발 Jan 24. 2022

축구공은 조상님이  차 줍디다.

내 모든 것을 쏟아내는 시간

  목요일에는 퇴근만을 기다린다. 매주 목요일 퇴근 후 7시부터 9시까지 내가 사는 곳 근처 풋살장에서 풋살 동호회 모임이 있다. ‘풋살’은 원래 실내에서 각 팀당 5인씩 10인이 배구 코트 크기의 경기장에서 작은 골대를 두고 하는 작은 축구 경기다. 5:5에서 7:7까지 규칙을 자유롭게 정하여 작은 축구 경기를 한다. 평일 저녁에 11:11로 큰 경기를 하기에는 인원 모집과 경기장 섭외에 부담이 있어 적은 인원이 모여 짧게 경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수전환이 빠르고 축구 경기장보다 좁은 경기장에서 공간을 확보하고 짧은 패스가 오고 가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활동량과 폭발력을 요구한다.          



  화요일에 곱게 다져놓은 하체 근육의 회복이 될 무렵에 맞춰서 풋살을 한다. 퇴근하기 약 한 시간 전부터 몰래 유니폼을 갈아입는다. 아침부터 미리 몸에 달라붙어 운동 효율을 높여주는 쫄쫄이 티와 남성용 레깅스를 입고 출근을 한다. 그리고 퇴근 즈음 모두의 긴장이 풀릴 무렵 셔츠를 벗어던지고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축구 양말을 갈아 신는다. 직장에서는 원래 운동만 하게 해 주면 말 잘 듣는 사람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놔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처음에는 이건 좀 아니지 않냐 했지만 환복의 기술이 점점 늘다 보니 목요일마다 5분 안에 후딱 환복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하는 내 모습을 보고 주변에서는 그냥 그러려니 해주신다. 그리고 그 긴장이 풀린 틈을 타 고개를 숙이고 안경을 벗고 손을 깨끗하게 씻고 렌즈를 낀다. 이후 퇴근시간을 5분 남기고 주차장에 뛰어가서 자동차 시동을 걸고 출동 준비를 한다. 올라와서 가방을 챙기고 다시 1등으로 뛰어나가면서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이라며 생기발랄하게 계단을 두 칸씩 뛰어 내려온다.     



  7시 10분쯤 조금 늦게 도착한 풋살장에서는 이미 게임이 한참 진행 중이다. 풋살장에 도착할 무렵 멀리서부터 보이는 서치라이트 조명이 진녹색의 운동장을 비추며 바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동호인들을 보면 가슴이 뛴다. 내가 소속된 풋살 동호회는 원래는 병원 사내 동아리였다. 간호사인 친구를 따라 내 무릎이 회복할 즈음에서 조심스레 참석해봤었는데 그 인연이 약 3년 동안 지속되었다. 얼굴을 마주한 지 3년이 되었지만 서로 존댓말을 주고받는 정도다. 굳이 더 친해지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 만나 두 시간 동안 운동하는 사이로 3년을 보낸 동호인들이 많다. 필요에 의해서, 내가 하고 싶은 운동만 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정도만 하고 별다른 뒤풀이 없이 헤어지는 사이로 시작을 했다. 동호인의 연령대는 20대에서 30대가 주를 이루고 40대와 50대가 중심을 잡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나도 30대에 이르자 동호회를 단순히 운동을 하는 모임을 넘어 사회생활의 일환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동호회에서 간부 역할을 맡았다. 홍보부장이라는 명목으로 동호회의 주요 내용을 담은 블로그와 밴드를 개설했다. 매주 출석 인원을 파악하고 팀을 짜고 운동장을 예약하는 등 여러 곁가지 일을 도맡아 하려고 노력했다. 가끔은 휴일에 팀 조끼와 골키퍼 장갑을 세탁하고 건조기에 말릴 때가 있었다. 내가 쓰는 세탁기에 타인의 땀을 섞는다는 일이 어찌 생각하면 참 불쾌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런 일을 자처했을까? 지금도 내 업무가 쌓여있고 심지어 쌓여있다는 걸 인지하면서도 업무 시간에 다른 생각을 하면서 게으름을 피우는 데도 매주 목요일을 기다린다.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축구를 하려고 목요일을 기다린다. 20대 때는 운동만 하고 싶은 곳을 찾아다녔다. 그냥 축구화 한 켤레를 한 손에 들고 터벅터벅 들고 갔다가 운동만 하고 도망가듯 귀가하는 동호회만 찾아다녔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서른을 넘기고 뭔가 해야 할 것만 같은, 가만히 있어도 내가 해야 할 차례가 돌아오는 때가 된 것 같은 부담감이 든다. 그 부담감이 곧 회원들과의 깊은 관계로 발전하면서 이 돈독한 관계를 바탕으로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어서 좋다.    


      

  나는 별도로 운영하는 SNS 계정이 없다. 온라인상에서 나를 표현할 필요를 못 느끼고 살았다. 그러나 시에서 지급하는 동아리 지원금을 신청하기 위한 자료를 축적하기 위해 풋살에 관련한 ‘네이버 블로그’와 ‘네이버 밴드’를 개설했다. 그리고 그 관리를 내가 도맡아 하면서 여러 글을 쓰고 올려봤다. 그렇게 여기까지 인연이 닿아 지금 내가 감히 글을 쓰고 있다. 단순히 운동을 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과 소통을 했다. 그들과 친구가 되고 그 이야기를 글로 써서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이 글을 보고 새로 가입한 젊은 회원이 많다. 시골지역사회에서 2030 남자들이 주축이 되어 꾸준한 출석률을 확보하여 운영하는 축구 동호회는 매우 적다. 특히 학연과 지연이 무관한 채 이 지역 근처에 직장 생활을 하며 각자도생 하는 청년들이 많다. 이 청년들이 내가 올린 글을 보고 문의를 하면서 모여서 함께 운동을 한다.          



  2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까지 연령대는 다양하다. 그러나 공 다루는 실력과 체력은 상향적으로 평준화되어 있다. 젊은 남자들끼리 모이다 보니 승부욕이 엄청나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다치지 않게 운동하려 하지만 막상 상대방 골대 그물을 찢을 정도로 강한 슛을 쏘고 막는다.       


   

  한 게임당 약 25분을 정해놓고 따로 심판을 두지 않고 경기를 한다. 반칙을 하거나 공이 아웃되면 알아서 상대에게 공을 넘겨주는 암묵적인 불문율이 있다. 상대가 넘어지면 즉시 경기를 멈추고 넘어뜨린 상대에게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표현을 하는 매너가 기본적으로 장착이 되어있다. 승패를 가리는 운동이지만 모두가 부캐 활동으로 선수를 하는 만큼 본캐를 보호하기 위한 부상 방지가 제일 중요한 원칙이다. 서로가 다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적극적인 경쟁을 한다. 나는 달리기가 빠르고 활동량이 왕성한 장점이 있다. 그래서 가운데에서 적극적으로 수비하고 상대 선수에게 공을 빼앗아 우리 공격수에게 패스를 하는 역할을 즐겨한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마치 지난 시간 동안 헬스를 통해 다진 근육을 몸싸움으로 증명하는 것 같이 한다. 그에 비해 공을 다루는 기술이 부족하다. 공을 잡았을 때 너무 성급하고 시야가 좁다. 그래서 공격 기회를 허무하게 날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보다 기술이 좋고 공을 잡았을 때 여유가 있는 팀원만 바라보고 공을 패스한다. 그런 상대적인 능력을 상호 간에 보완하는 전략을 구상하는 것도 또 다른 풋살의 재미다. 그리고 하체 중량 운동을 하다 보니 중거리 슛도 꽤 좋아졌다. 지난 시간 동안 나의 성장을 운동장에서 다양한 방면으로 증명할 수 있는 재미가 정말 크다. 약 20m 거리에서 중거리슛을 성공시켰을 때 그 쾌감은 나의 일주일을 기분 좋게 살게 하는 엄청난 원동력이 된다.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 모든 찰나의 순간을 기억한다. 패스를 잡고 살금살금 굴러가는 공의 왼쪽에 내 왼발을 강하게 내려찍으면서 따라 내려오는 길게 뻗은 오른발이 공의 정중앙을 때릴 때 나는 손흥민이 된다. 공을 끝까지 바라보고 있으나 내 오른발에 맞아 떠난 공의 궤적의 소리가 귀로 들린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공을 바라보기도 전에 이미 우리 팀원들의 함성소리가 들린다. 공은 이미 골대 그물망에 꽂혀 있고 팀원들이 나를 축하하기 위해 두 팔을 뻗고 나에게 달려온다. 이런 모든 순간을 한 순간도 까먹지 않고 기억할 수 있다. 이런 순간적인 쾌락을 느끼고 싶어서 풋살을 하나 싶다.     



  이렇게 나도 승부욕에 불타다 보니 이 목요일 두 시간에 모든 운동 일정을 집중하고 준비한다. 다른 회원들도 나와 같이 헬스도 병행한다. 모두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일주일을 준비한다. 고정 출석 인원이 네 팀이나 될 정도로 꾸준한 출석을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아니라면 다른 팀과 경기 일정을 잡거나 대회에 출전하고 싶지만 현재는 우리끼리 하는 자체 친선전으로 실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JTBC 예능 ‘뭉쳐야 찬다’에 신청서를 제출해봤다. 그러나 뚜렷한 팀 특색이 없어 탈락이 된 것 같다.     

자체 전 만으로도 혈투에 가까운 경쟁을 펼치고 경기가 끝난 후에는 후회 없이 후련함을 가득 안고 집에 돌아간다. 집에 겨우 돌아온 후에는 땀에 젖은 운동복을 세탁기에 넣고 찬 물로 샤워를 한다. 발바닥이 욱신욱신한다. 풋살을 할 때는 풋살화라는 고무 돌기가 많이 박힌 운동화를 신는다. 푹신푹신하여 편한데 이 신발을 신고도 워낙 많이 뛰다 보니 발바닥부터 아킬레스건을 타고 올라 종아리 근육에 몰린 혈액의 무게가 느껴진다. 좌변기에 앉아 찬물을 하반신에 뿌리며 나의 활약상을 복기한다. 그렇게 샤워를 하고 난 후에 빨래가 다 될 무렵 빨래를 널고 냉동고에서 얼음팩을 꺼낸다. 수건으로 얼음팩을 감싸고 종아리를 그 위에 올려놓는다. 뜨겁게 보낸 하루를 식히며 잠시나마 가벼워진 머리와 몸을 침대에 눕히고 여전히 두근대는 심장을 천천히 진정시키며 하루를 마감한다.          



  한낱 나의 취미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다. 내가 정한 부캐로 인한 생산성 있는 부산물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부산물을 정하지 않고 일단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글을 쓰다가 이 문제에 봉착했다. 그래도 미미한 단계라도 일단 써나가 보자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그리고 이렇게 어느 정도 이번 편을 마무리할 무렵 반복하여 읽어내려오다 보니 내 부캐의 생산물은 ‘사람’이었다.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이 곧 친구가 되고 학연, 지연을 떠나 같은 운동을 좋아하고 함께 즐기는 범위 안에서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 범위를 넘어서 작년 동안은 경조사를 함께 챙길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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