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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Sep 01. 2015

캐나다 이민생활 <11>

좌충 우돌 초기 정착기(A)

(사진 설명) 여름의 끝물에 선 8월 28일 금요일 폭풍우가 몰아쳤다.  군데군데 나무가 넘어지면서 전깃줄을 건드려 한 이틀 정도 불이 나갔었다. 40만 명 정도가 고통을 받았다. 집 앞 오솔길. 대충 큰 가지는 치워 진 상태다.


초기 이민자들은 번듯한 직장을 가질 수가 없다. 우선 영어가 서툴고 문화가 다르니 채용되기가 힘들다. 대부분 몸으로 떼우는 직종에 종사하게 된다.  이런 업종은 많은 편인데 이민자들은 몸을 사린다. 전혀 다른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혼자서 뭔가를 도모하다가 한번 실패를 겪게 되면 소매 말아 올린 뒤 아무 일이나 달려들게 된다.


나에게 주어진 일도 식당 식재료 구매와 반제품 배달일이었다. 주인은 밴쿠버에서  한식당으로 제법 성공한 분인데 세 군데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설렁탕을 주메뉴로, 순두부 전문집도 한 군데 운영했다. 본점턱인 설렁탕집은 모든 메뉴를 반제품 형식으로 다 만들었다. 두 군데 식당에 배달하면 그곳에서 익히거나 약간 마감 손질을 한 뒤 손님에게 냈다. 다운타운에 있는 식당은 주로 젊은 층을 겨냥해서 메뉴가 다양했다. 특히 중국 유학생들의 구미에 맞게 가공되기도 했다.


제일 필요한 기술은 운전이었다. 이민 두 달만에 광역권의 도시 운전은 쉬운 게  아니었다. 다행히 길은 주로 일련번호의 숫자로 돼 있는 게 대부분이고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가령 남북은 스트릿이고 동서는 에브뉴로 표시했다. 동과 북으로 갈수록 숫자가 높아졌다. 이런 간단한 지식을 갖고 시작했다. 지도를 간혹 참고를 하면서 나름 못하는 게 있을 수 없다는 각오로 부딪히려고 애썼다.


구매처는 차이나타운과 코스코, 홀세일, 한인 슈퍼 등 다양했다. 중국인들은 이민역사가 오래돼서 상당히 많은 인구가 살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도 소매 시장을 완벽히 장악하고 있었다. 쌀만 해도 그들의 손에서 놀아날 정도다. 저희들 먹는 쌀뿐만 아니라 차진 우리들의 쌀도 취급한다. 채소나 어패물도 다양하고 가격도 착하다.  다만 주차하기가 만만찮다. 스티커는 순전히 내 돈으로 물어줘야 하기 때문에 시장 주변을 돌고 돌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또 시장보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도 안된다. 주로 건물과 건물 사이 거나 뒷골목 같은데 댄다. 우범지역이지만  재빨리 사고 튄다. 


하루는 아주 반가운 물건을 만났다. 채소를 사러 선라이즈라는 중국인가게에 들렀는데 이곳 창고에서 열심히 채소를 다듬고 있는 중국 아줌마들의 손에 로고가 선명한 우리의 박카스가 들려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땐 아무것도 아닌 게 여기서는 무척 신기하고 뿌듯했다.


홀세일의 경우 구매하기가 손쉽다. 말 그대로 소매상들만 취급하는 큰 수퍼쯤이다. 주로 한 묶음이 상당히 크다. 대신 싸게 판다. 다만 계란 살 때는  워크인 쿨러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한여름에도 추위를 탈정도다.계란의  종류가 다양하고 순두부에 들어가는 것은 사이즈가 딱 맞는걸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한치의 오차도 용납되질 않는다. 큰걸 사면 순두부가 싱거워지고 작은 건 짜게 된다는 주방의 설명이다. 이걸 찾는데 시간이 걸린다. 


철저한 회원제로 운용되는 이 가게는 카드가 없으면 절대 출입이 안된다. 출입문 기도가 중국아주머니인데  융통성 제로에 도전하는 사람 같다. 예를 들어 회원카드를 차에 두고 왔거나 안 가져 왔을 경우 매일 보는 얼굴에 그냥 허용해도 될법한데 절대로 안된다. 지금 뭐하는지 궁금하다.


코스코 구매. 이곳은 열두 달 바쁜 곳이다. 주거지 밀집지역에 있는 탓에 주차하기도 쉽지 않다. 그만큼 손님이 끓는 곳이다. 안에 들어가면 거의 부딪힌다. 이동네 사람들 서로 닿는걸 끔찍이 싫어하는데 이곳 에서만 예외다. 그러나 내가 가면 모두 길은 튼다. 주방에서 쓰는 남자 앞치마를 입고 가면 온갖 냄새가 진동을 하고 이게 거의 수류탄 10개 몫을 한다. 말 안 해도 멀찍히 떨어지면서 수군 된다. 아무도 대 놓고 말하지 못한다. 어쩌다 폐쇄회로 화면을 보던 직원이 놀래서 나오기도 한다. 쇼핑 가이드라면서 뭘 살 건지 친절히 묻는다. 목록을 보여주면 잽싸게 안내해준다. 뒤로는 온갖 악담을 퍼붓겠지. 세월이 흘러 지금 생각하니 좀 미안한 생각도 든다. 그땐 물 불, 똥 인지 된장인지 구분이 안되던 시기였다.


한인 슈퍼. 대부분 조금씩 비싸다. 우리 입맛에 맞는 건 분명히 존재하는데 식당 식자재로 사용하기엔 부담되는 가격이다. 그래도 꼭 필요한 물건은 사러 간다. 특히 삼계탕에 들어가는 인삼의 경우 최고 싸다. 중국 마켓이나 현지서 생산되는 제품에 비해서도 경쟁력 있는 가격이다. 현재는 더 큰 마켓이 생겨 경쟁체제가 되면서 가격이 많이 내렸다. 그리고 현지 한국 농장이 몇 군데 생기면서 우리 식단에 오르는 식자재를 싸게 수월하게 구매하는 시대가 열렸다. 그런 이유로 아내의 불만을 뒤로 하고 우린 삼시 세 끼 한식으로 조진다. 밥 먹는 것 외는 별로  기다려지는 게 없는 탓인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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