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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Jul 03. 2015

캐나다 이민 <2>

길고도 험한 영주권 취득과정

오랫동안 책하고 담을 쌓고 살았던 탓에 모든 게 생소했다. 우선 내가 영사라면 뭘 물어볼 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먼저 인터뷰를 본 동서의 충고를 받아 근 40여 개의 질문과 답변을 만들었다. 이웃에 사는 영어박사한테검증까지 마치고 달달 외웠다. 문제는 듣기였다. 실제 외국인들의 대화를 테이프로 들어보기도 했지만  너무 먼 고지였다. 그래서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마침 캐나다 밴쿠버 섬에서 온 여자 선생님이었다. 영어 배우는 목적을 설명하니 밴쿠버 인근과 자기 고향에 대해 참고자료라면서 열심히 설명해주기도 했다. 조금씩 나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와 함께 회사를 정리할 지에 대해 고민했다. 마음이 떠 난상태서 업무를 계속한다는건 고역이면서 회사에도 미안한 일이었다. 이때 친한 술친구한테 나의 속마음을 말했다. 이민 갈 수도 있다고. 접수는 했는데 결과는 미지수다. 절대 남한테 얘기하지 말라면서 술안주로 발설한 게 일주일만에 전직원이 알게 됐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나 윗사람은 확실치 않으니 휴직을 권했다. 일단 6개월 휴직을 하고 이민 뒤 뭘 먹고 살 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조개구이집을 열기로 했다. 이때가 99년 중순쯤이었다. 6개월만 경험 삼아하기로 했다. 미용실 하다가 그만둔 빈 가게를 개조했다. 큰 투자는 못했다. 여차하면 접을 걸 감안했다. 장사는 오후 4시부터 밤 12시까지.  주로 조개구이를 안주삼아 술 마시는 술집 타입으로 운영했다. 자리가 좋아서인지 미숙함에도 그런대로 장사는 먹고 살만했다. 몸이 약간 피곤하긴 해도 이민 가면 어떤 난관이 기다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모든 걸 감수했다. 6개월쯤 됐을 때 인터뷰 날짜가 잡혔다. 신청한지 2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장사한다고 소홀했었던 예상 질의 응답을 다시 한번 외우기 시작했다.


결전의 날이 다가오면서 걱정이 앞을 가렸다. 모든 역량을 이민 가는데 맞춰 둔 탓에 만일 안된다면 다른 대안이 존재치 않았다.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는  일뿐이라고 생각했다. 하루 전 이주공사에서 예비 인터뷰를 봤다. 고개를 약간 가웃했다. 조금 부족하다는 뜻인 것 같았다. 숙소에 와서 마지막 점검을 했다. 그리고 속으로 빌었다.


 드디어 그날. 다행히 대사관의 영사는 중년의 여자 영사였다. 넉넉한 풍채가 사람 좋아 보였다. 웃는 모습도 날 좀 안도하게 만들었다. 일단 두개는 예상했었던 질문을 했다. 왜 가는지, 거서 뭘 할 건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리고 이어진 질문. 나의 미래 직업에 대한 것이었다. 알아듣기도 힘들었다. 같이 간 통역이 우리말로 해줬다. 대답은 내 몫이었다. 계속해서 질문이 쏟아졌다 알아듣는 건 바로 답변을 하고 일부는 통역을 통하기도 했다. 결론의 시간. 영사 입을 쳐다 봤다. 좀 망설이는 표정이 역력했다. 


너의 영어실력으론 좀 부족하다. 대신 잡 오퍼만 가져오면 통과시켜주겠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조건부 합격이었다. 이사실을 이주공사에 말했다. 이주공사  사장의 소개로 밴쿠버 현지 업체의 소개서를 받고 잡오퍼를 제출했다. 이젠 천명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식당에 몰입하면서 정리 수순에 들어갔다. 식당은 한 달만에 주인을 만나 넘겼다. 그동안  먹고살고 권리금도 조금 더 받았다.


그러나 인터뷰 결과는 오리무중. 답답함만 더했다. 이쯤 동서는 다른 방법으로 미국 오클라호마로 이주를 했다. 만일 캐나다행이 좌절되면 미국 투자이민제도를 활용해보라고 했다. 확인차 미국으로 갔다. 부산 동경 시카고 오클라호마로 가는 긴 여정이었다. 시카고 공항은 촌놈을 충분히 당황하게 만들었다. 너무 복잡하고 컸다. 갈아 탈 곳까지 자력으로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짧은 영어를 총동원해서 겨우 찾았다.


 오클라호마 비행기에 오르자 한꺼번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짧은 시간에 깊은 잠에 빠졌다. 드디어 오클라호마시티. 몇 년 전 연방정부 건물이 테러당한 것 말고는 그곳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곳이었다. 동서 식구가 중고 벤을 몰고 마중을 나왔다. 그들은  불과 한 달 전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미국 사람 티가 팍팍 났다. 다시 이민 초보집에서 신세를 지게 됐다. 미안하고 죄송한건 뒷전이고 내 볼일만 눈 앞에 얼른거렸다. 알차게 시간을 보내면서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데 실제 뭘해야 할지 서로 잘 몰랐다.


 일단 일주일 정도는 시차 적응 차원에서 골프장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교민이 많지 않았고 거의 직업이나 개인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탓에  평일 낯 시간대에 같이 공을 칠 수 있는 유휴인력이 없었다. 할 수없이 한인성당 신부님을 모셨다. 3명이 매일 쳤다. 그리고 맥주도 한 잔 했다. 좋은 시간이었다. 차츰 내가 왜 여기 왔는 지도 모를 지경이 돼 갔다. 하루하루 놀기 바빴다. 스스로 약속한 대로 일주일이 후딱 지나고 움직일 때가 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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