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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Oct 28. 2015

캐나다 이민생활 <19>

적응기와 장애물(C)

 (사진설명)  시애틀에서 열린 교민 합창단 정기 공연. 멀지 않은 곳이고 아는 사람이 있어서 참석했다. 한국에서 유명 성악가들이 와서 자리를 빛내 줬다. 교민 커뮤니티는 작지만 할 것은 다하고 산다. 왼편 서양 아저씨는 이극장 준비요원.


10여 년 세탁소 하면서 보고 느낀 서양사람들의 성향은 한마디로 요약하기 힘든 면이 있다. 정말 순순하고 착한 사람이 있는 반면 상상하기 어려운 나쁜 인간도 존재한다. 보통 밝고 선하고 약자에 대한 배려는 몸에 밴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다중이 모인장소와 낯 시간대에 이뤄지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실제 이와 상황이 반대인 밤에, 주변에 누군가가 없을 경우에는 어떨까? 분명 같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손님이 가게에 와서 물건을  주고받으면서 몇 마디 나누거나 인사를 할 때는 천사의 표정이다. 그러나 이들이 돌아서 나가면서 유리창에 비친 그들의 표정은 무섭다. 그게 본모습이 아닐까 . 오랜 단골들은 대부분 가족 전체를 우리가 알고 친밀감도 남다르다고 우린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문제가 생기면 이런 생각은 착각이란 걸 안다. 너무 사무적이어서 그동안 켜켜이 쌓였던 우정은 찾을 길이 없다. 이럴 때 조금씩 놀랜다.  반 정도는 그렇게 행동한다.


    그녀의 이름은 워너다.  영화사 이름과 같아서 아직 기억에 담아두고 있다. 서양 아줌마치고 보기 드물게 양쪽 엄니가 두드러져 보이는 여자다. 우리가 인수한 뒤에도 꾸준히 옷을 맡겼다. 하루는 오리털 이불을 가져왔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세탁을 안 했던지 한쪽이 노랗게 변색돼 있었다. 그게 그 이불의 특징이었다. 며칠 뒤 찾아갔는데  난데없이 바뀠다면서 다시 가져왔다. 그럴 경우는 극히 드문데도 우리가 햇병아리고, 혹시 하는 마음에 그들의 의견을 수용해서 일주일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타인과 바뀠다면 그 사람도 다시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불은 특히 남의 것을 안 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확인차 이틀 뒤 다시 왔다. 그리고 4일 뒤 자기 남편과 또 왔다. 일주일을 참지 못하고 계속 푸시를 했다. 우리는 얘네들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확인할 길이 없었다. 일단 이불의 한모서리가 노란 건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펄쩍 뛰면서 "우린 커버를 하기 때문에 변색되지 않는다"고 했다. 종업원 베티도 거들었지만 뾰쪽한 수가 없었다. 카운터를 둘이서 막아서면서 장사를 못하게 했다. 할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돈으로 물어주기로 했다. 쟤네들이 인터넷으로 가격을 확인한 뒤 우리에게 청구했다. 그런 메이커가 있는지도 모를 이상한 이름을 들이대면서 돈을 받아 챙겨 갔다.


요즘도 간혹 우리 동네에서 마주친다. 얼굴 표정은 여전히 덤덤하다. 양심이 없는 사람 같았다.  이제는 가게 내부에 시시티브이를 달아서 조금 덜하다. 그러나 이게 모든 걸 막아주진 못한다. 색깔 정도는 확인되지만 사이즈는 체크가 되지 않는다.


한 번은 약간 살점이 있는 남자가 양복 옷도리를 맡겼다. 이 사람도 자기 옷보다 작다면서 다시 가져 왔다. 실제 입혀보니깐 단추가 안 잠기고 소매는 길었다. 그래서 녹화장면을 확인했다. 검은 옷은 맞는데 크기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우린 확신했다. 그 브랜드의 옷을 입는 사람은 그 사람뿐이라는 것. 그리고 소매는 접어서 입은 흔적이 있었고 앞 단추는 배가 너무 불러서 애초 잠그지 못했던 것이다. 몸이 기성복을 사 입기에는 이상 변형이었던 것이다. 이걸 맞추면 저쪽이 안 맞고 하는 스타일이었다. 심하게 항의하던 그들도 내가 차분히 설명하니 구시렁거리면서 갔다 그리고 다시는 안 온다. 올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문제와 동시에 이상한 잡놈들이 우리 가게를 기웃거렸다. 처음 촌놈이 세탁소를 한다는 소문이 나서 그런 것 같았다. 카운터 돈통을 노리는 인간이 등장한 것이다. 사람이 가게에 들어오게 되면 차임벨이 울리고 우리가 나가는 시간은 대충 2,3초 정도. 이걸 몇 차례 시험해대던 애들이 있었다. 차임벨이 울려 나가면 제 딴에 숨는다고 카운터 밑에 머리를 푹 박는다. 뭘 돌아 드릴까라고 하면 그때사 "천정 고치지 않느냐"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인다. 이렇게 몇 번 하다가 한 번을 털어서 도망갔다. 불과 몇 초 사이에 성공함 셈이다. 이 소문이 나자 이웃 옷가게 주인과 종업원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우릴  위로해 줬다. 평소 우리 종업원들과 사이가 안 좋았는데 이 건 별건으로 치는 모양이었다.


한마디로 내우 외환이 한꺼번에 닥친 셈이었다. 이게 근 6개월 정도 지속된 것 같았다. 이와 중에도 진짜 인간 같은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소위 말해서 우리가 약자로 비쳤고 이걸 못 보던 주변이 작은 것부터 조금씩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베티는 세탁물에 문제가 생기면 자기 일처럼 집에 가져가서 해결해 오기도 했고 어떤 손님들은 영어가 부족한 나를 위해 카운터에서 조근조근 말을 걸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뭘 물어보면 제일처럼 처리해줬다. 가령 특수 형광등을 사는 곳을 모른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찾아주기도 했다. 우리가 손님과 언쟁이 벌어지면 그다음 손님이 그 광경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우리가 억울하다 싶으면 나서서 우리 편이 돼 주기도 했다. 하루는 어떤 손님이 자기 옷을 벗어 내게 치는 시늉을 했다.  내가 살짝 피하면서 맞진 않았는데 이를 지켜보던 아주머니가 자초지종을 물어보면서 경찰에 리포트하라고 했다 자신이 증언해줄 수 있다면서.


이런 사회 안전망구실을 하는 구성원이 있기 때문에 경찰인력이 부족해도 사회는 그냥 굴러가는 것 같았다. 특히 다민족이사는 이민사회는 범죄의 소지가 항상 존재하는데 이걸 제어하는 시스템이 바로 이웃들의 관심이 아닐까 생각 든다. 이들은 정치에 너무 무관심하지만 담장 너머 이웃에게는 무한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사실 남녀 간의 사고도 많이 나기도 하지만.


이렇게 몸으로 때우면서 세탁소일과 이사회 적응 문제가 조금씩 해결돼 가는 느낌은 가게 한지 6개월 이 지나고 나서부터다. 그렇다고 영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대처하는 게 한수  진화됐다고나 할까.


나쁜 손님은 그 이후에도 몇 번 더 나타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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