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력 일기
찬장에 새 접시들을 쌓아 두고도 못생기고 짝도 안 맞는 오래된 식기들을 기어이 고집하는 엄마에게 공고하듯 말했다. "나 시집갈 때 쟤네들 가져갈 생각 0.1도 없으니까 아끼지 말고 다 꺼내 써~"
내 눈엔 알뜰하다 못해 궁상의 경지인 엄마가 혹시 그런 계획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심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다. "줄 생각도 없으니 걱정 말어"
엄마가 접시를 바꾸지 않는 이유는 정 때문이란다. 수십 년을 매일 마주한 사이인데 멀쩡한 그릇을 버리는 일에 도무지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차라리 깨졌으면 하는 맘도 든다고 말이다. "그러니 너는 처음부터 예쁘고 좋은 거 사서 오래오래 써"
엄마는 대체 왜 그럴까?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왜 아빠랑 결혼했어?" 하면, 엄마는 늘 "정들어서"라고 말했다. 살림부터 결혼까지 이렇게 엄마의 이유들은 닮고 싶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엄마를 좋아하지만 엄마처럼 사는 건 두려웠다. 평생 저렇게 착하게 살까봐 두려웠다. 착하면 약한 거라고 생각했다. 어릴 땐 그랬다. 유하고도 강한 법을 몰랐다. 요즘은 많은 선택에 기로에서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는 나를 발견한다. 점점 엄마를 닮아가고 있지만 전처럼 두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