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 나기 시작한 사랑니는 스물 두 살의 나에게도 여전히 암 덩어리 같은 존재였다. 빼지도, 갖고 있기도 찝찝한 네 개의 이빨들이 가끔 욱신댈 때 마다 나는 어렸던 내가 떠오르곤 했다.
“어디 아파? 안색이 안 좋아 보이네. 뭘 잘못 먹었나?”
“잘못 먹은 거? 잘못 먹은 게 있다면 시간이겠지. 할 수만 있다면 토해내고 싶어.”
지금의 후회가 과거에게 미치는 영향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당시의 시간들을 굳이 떠올려보는 데에 이유가 없다. 어차피 후회라는 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함께 털릴 것들이었으므로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다녀올게.”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는 짧은 문장. 나는 그 말을 남기고선 집을 나섰다. 여름이 왔다며 울리던 재난 경보 문자가 왔던 게 엊그제였던가. 그런 문자가 왔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싸늘한 바람과 서늘한 소리들이 몸을 감싼다.
겹쳐진 산등성이를 가릴 정도로 안개가 깊숙이 찾아왔다. 하늘을 모두 뒤덮은 저것들이 곧 나도, 나의 과거도 뒤덮을 것만 같은 날씨.
“여기 보이죠? 잇몸 안에 사랑니가 누워있네요. 이건 뽑아야겠는데.”
“안 뽑으면요?”
“조금 나중에 뽑는 건 상관없지만, 이게 나기 시작하면 뽑아야 할 거에요.”
라고. 나눴던 대화는 이상하게 잊혀 지질 않았다. 보이지도 않는 사랑니가 잇몸 속에 누워있다는 얘기는 조금 섬뜩하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당시 내 어금니 뒤는 분명 아주 평평하고 매끄러웠기에 입 안 깊숙한 곳에 나도 모르는 세계가 있지 않고서야 그게 나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사실을 껴안은 채 1년을 보냈다. 사랑니는 그 동안 아무 말썽 없이 곱게 숨어만 있었다. 정작 가장 문제였던 건 이빨이 아니라, 나와 그 사람의 관계였다. 이제는 끊어진, 그 때는 끊을 수 없었던 어려운 관계. 뽑아내기에는 너무 두려웠던 그런 관계.
뽑아서 시원했다면 나는 사랑니마저 가차 없이 뽑아버렸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괜히 뽑기도 민망할 만큼의 시간이 지나버린 후였고, 여전히 남아있는 사랑니 네 개가 왠지 응어리처럼 나를 괴롭혔다. 오늘처럼 생각이 많은 날엔 더욱.
또. 또 한 차례 바람이 나무를 세게 흔들고 나의 잡념도 바람을 따라 흩어진다. 내 앞의 길들을 보며 이대로만 평화롭기를, 하고 바란다. 그러나 꼭 이럴 때. 그는 날 돕지 않는다. 욱신, 어디 있는지도 보이지 않으면서 또 다시 나를 괴롭힌다. 이러다 말겠지, 이러다 말겠지 하며 보낸 4년의 시간이 무색 할 만큼 아픈 울림.
나는 그 때부터 괜찮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래, 자꾸만 그를 떠올리게 한다. 너는 자꾸만 그렇게 마음속의 응어리처럼 남아 나를 괴롭힌다. 잘못 먹은 4년을 토해내고 싶을 만큼 짖궂게, 장난을 친다.
휘청. 바람결에 나무가 흔들린다.
아니, 흔들리고 있는 건 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