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한 것들
5월에 보았던 목련과 동백을 아직도 나는 잊지 못하고 있다. 순백의 목련과 순결한 붉은색을 지닌 동백. 눈이 부시다는 말이 저절로 생각나던 눈 앞의 세계. 사아, 불어오는 바람에 작은 벚꽃은 허무하게 떨어지며 바닥을 뒹굴고 그 보다 단단한 꽃들은 바람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함께 흩날리던 풍경. 아름답고자 태어났다 말하고, 아름답지 못할 때 즈음에는 인사를 건네는 고고한 것들을.
별
왜 매번 늦을까. 우리가 보고 있는 저 별이 사실은 몇십, 몇 백 광년 전에 내던 빛인 것처럼 너의 의중이 사실은 그랬다는 걸 왜 매번 늦게 깨닫고 마는 걸까. 무관심 때문이었을 까, 혹은 믿고 싶은 대로 믿어버린 탓일까.
또 하나의 물음. 전달은 제대로 했었을까. 이 와중에도 난 당신 탓을 한다. 나에게 제대로 말하려고 했었는가.
왜 우리는 그토록 가까웠음에도 이젠 서로에게 죄인이 되어있는지, 서글퍼 서러워 눈물이라도 가득 흘려내고 싶은 어둔 밤.
가장 자연스러워져 버린 일
때때로 머릿속에서 뜬금없이 문장들이 나타난다. 적어놓지 않으면 곧 까먹을지도 모르는 문장들. 그런 문장들은 대부분 강렬한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혹은 누군가가 전해주고 싶었던 느낌이라고 할까. 아주 낯설지도 않은 느낌이거니와 그렇다고 들어봤던 느낌은 더더욱 아니다. 내 글들의 시작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쓰여 지곤 하는데, 그렇게 들어온 문장을 보고선 느낌대로 해석하며 적어나간다. 떠오른 문장에 대해서는 이해를 할 적도 있고 못 할 적도 있다. 이해를 할 적에는 한 장 두 장도 훌적 넘기며 글자를 적어나가곤 하나 이해를 못 할 적엔 적으면 두어 문장, 많으면 두세 문단을 쓰다가 결국 이해를 포기하고 적기를 그만두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런 문장들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곤 했는데, 요즈음은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터무니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귀신이 전해주는 문장이 있지도 않겠냐고 생각한다거나 예컨대 예전에 누군가가 하고 있던 말속에 숨겨져 있던 기운을 기억하고 있다가 머릿속에서 혼자 해석한 끝에 내놓은 결론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의식에서 나온 것인지 무의식에서 나온 것인지 정확한 판별은 역시나 불가능하다. 그저 떠오르는 것뿐이기 때문에 나는 어디서 그것들이 타고 내려오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가끔 그런 때가 있지 않은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약 다섯 살에서 일곱 살 사이에 먹었던 복숭아가 생각나는 것이다. 아무런 연관도, 접점도 없는 기억이 저절로 수면 위를 부유하는 때. 잡지 않으면 또다시 그대로 흘러가버리는 기억. 찾을 땐 그렇게나 떠오르지 않던, 아니 찾기는 했었는지도 알 수 없는 기억.
왜 떠올랐을까? 역시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당사자도 모르는 일을 물론 남이 알 수는 더 더욱이 없을 것이고.
그처럼 문장이 수욱 떠오르는 것이다. 그런 문장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이미 스스로 감당하기엔 힘들고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전해주자니 왠지 아까워 혼자 끌어안고 여태 끙끙 앓고 있다.
복숭아
사람들의 얼굴은 죄다 익은 복숭아 같지, 그렇지 않니? 하는 물음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니
정말로 그랬다.
노란 바탕에 붉은빛이 달큰하게 물들어 잘 여문 여름의 과일 같았다.
반지
검지에 끼우던 반지를 빼어 중지에 끼우자 바로 옆 손가락에 끼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질감이 너무 크게 느껴져 다시 빼야만 했다. 이미 내 자리는 여기라는 듯, 작은 아이가 자리를 고집하는구나 싶었다.
이질감을 참고 계속 끼우다 보면 언젠간 익숙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만 두기로 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만 하는 것들도 존재하는 법이라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