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나에겐 방문이 없다

장소

by 채지연

우리 집 방에는 문이 없다. 특히 내 작업실 방에는 문을 아예 떼버렸다. 나는 폐쇄적인 공간을 많이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3년 전 병원에 입원했을 때 교수님과 면담을 통해서였다.


처음 폐쇄 병동에 들어갔을 때, 적응하지 못하여 안정제와 약을 먹어도 나는 울부짖으며 밖으로 내보내 달라 소리 질렀다. 이렇게 말하면 정말 미친 사람 같은데, 그땐 정말 미쳐있었다. 창문도 없고 말캉한 벽에 주먹을 쾅쾅 쳤다. 그때는 몸무게가 지금의 반이었다. 살이 미친 듯이 빠지고 온몸에 상처투성이였다. 내가 나를 할퀴었다. 내보내지 않으면 나를 어떻게 하겠다고 나를 가지고 협박했었다. 그때 교수님과 면담했었다. 내가 다칠까 봐 폐쇄병동에 입원시킨건데 도대체 왜 그렇게 적응하지 못하는 건지. 과거를 돌이켜 보며 얘기를 나누었다.


첫 번째는 이모 집에서 살 때였다. 그 방에는 선풍기, 에어컨 하나 없이 책상 하나 있는 방이었다. 더운 여름날 거실에 에어컨을 틀어놓으면 나는 방문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바람을 쐬며 버텼다. 땀이 뻘뻘 나도 창문을 열고 한 톨 들어오는 바람에 살 수 있었다. 배고픈 저녁에는 눈치가 보여 이불을 뒤집어쓰고 몰래 먹었다. 먹는 소리가 방 밖으로 들릴까 싶어 음식을 살살 녹여 먹었다. 땀이 뻘뻘 나 이불에는 고약한 냄새가 나곤 했다. 자주 꿈을 꾸곤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꿈. 이게 제일 처음 작은 공간에 갇힌 것이었다.


두 번째는 내가 수능을 완전히 망치고, 교무실에서 선생님께 호되게 혼났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났던 엄마가 날 방안에 가뒀을 때였다. 엄마는 내가 집 밖으로 나가는 걸 원치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딸 어디 대학교 갔어? 라는 물음에 답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방 밖으로도 나가지 못했다. 엄마는 나를 보면 화를 냈고, 집안은 살얼음판이었다. 나 때문에 동생은 눈치를 보았고, 아빠도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잠들면 밥을 먹고, 엄마가 깨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방안에서 숨어 생활했다. 가끔 창문에 엄마의 그림자가 비치면 벽에 딱 붙어 엄마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불을 더욱 꼬옥 쥐고 숨었다. 나는 궁금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이모 집에서 그렇게 숨어서 지냈는데 나는 여기서 또 이렇게 숨어서 지내야 하는 걸까. 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은 고작 이 방 한 칸일까.


나는 여름에도 솜이불을 덮고 잔다. 얼굴에 파묻힐 정도로 폭신한 이불을 꽉 껴안는다. 그 이불이 나를 보호해주는 것 같다. 그 좁은 방 한 칸에서 나를 숨겨주었던 건 이불뿐이었다. 두꺼운 이불이 없으면 잠이 들지 못하고, 방문이 잠기고 창문이 없는 곳에 가면 무섭고 두렵다. 엄마 말대로 좋은 기억은 떠올리지 못하고 나쁜 기억만 우득우득 기억해내는 못된 아이일 수 있다. 하지만 내 상처의 그릇이 그 정도인 걸 어떻게 하겠는가. 다른 이들은 힘들었다고 넘길 수 있는 일을 나는 입원까지 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그 정도야 라고 넘길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다. 나는 조금 많이 힘든 일이다. 남들과 비교하여 애써 괜찮아 지려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그때 일들이 너무 힘들었고 지금 그 영향을 받아 집의 온 방문을 떼는 소심한 반항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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