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시간은 유한하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p.38

by 채지연

‘살아보니 시간만큼 공평한 게 없어요’

시간은 유한하다. 아침에 일어나고 세수하고 옷을 입고 출근을 한다. 모두에게 기계적으로 인사를 하고 제자리에 앉아 6시까지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본다. 하루하루가 똑같은 하루이다. 하는 일 없이 하루가 고되고 피곤하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얼굴을 파묻으면 벌써 7시다. 대충 머리를 질끈 묶고 집안일을 하고 밥을 챙겨 먹으면 내일 출근을 하기 위해서 자야 한다.


시간은 유한하다. 고되게 살았다고 시간을 더 주지 않는다. 피곤함에 잠이 들어 다음날 눈을 떠보니 또 똑같은 아침이다. 다들 어쩜 그렇게 웃으면서 잘 살아가고 있는지 신기하다. 나는 이 똑같은 아침이, 저녁이 몸서리 칠만큼 싫은데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고 한다. 출근할 때 버스가 사고가 났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고속버스에는 왜 창문이 없는지 나는 안다. 빠르게 지나가는 도로위로 뛰어내리고 싶으니깐. 어느 때에는 타고 있는 이 지하철이 통째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럴 일은 없다. 지하철은 야속하게 내가 내릴 곳에 정확한 시간에 내려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하루는 나에게 매몰차게 만큼 너무나 똑같이 흘러간다. 나의 삶은 책으로 쓰일 수 없을 만큼 똑같다. 특별한 일도, 특별한 사람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내 삶에서조차도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평범하게 길을 걸어가는 행인5.


깜깜한 방안의 불을 켜면 출근했을 때의 방 그대로다. 어느 날은 등이 나가 불조차 켜지지 않았다. 더듬더듬 침대로 올라가 가만히 앉아있었다. 야- 하고 소리 내도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허리를 말아 척추를 둥글게 하고 침대에 그대로 누웠다. 외로움이 그대로 굳어 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발톱을 숨긴 외로움이 딱딱해졌다. 나는 살아있다고 나는 외롭지 않다고 반항하고 싶었지만 움직일 힘이 없었다. 주말이면 아무 말 없이 잠들었던 자세로 그대로 깨어있다 멍하니 눈만 깜빡이다 밤이 되면 다시 어두워진 방 안에서 그대로 잠이 든다. 아무것도 없다. 나의 삶은 누구도 관심이 없다. 나도 관심이 없다. 나는 왜 살아있는 거니까 반문해본다. 답을 할 수가 없다. 굳이 살 이유가 없는데 왜 꼬박꼬박 돈을 벌고 먹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8평 남짓한 방안에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불 꺼진 방안에 쥐 죽은 듯 고요함만 남아있다.


내 삶은 온통 회색빛으로 칠해진 그림과 같다. 색이 빠진 잘못 칠해진 그림. 세상에 예쁜 색도 많은데 하필이면 거무죽죽한 회색빛으로만 칠해져 있다. 새로운 색으로 다시 칠할 힘도 없다. 새로 칠해봤다. 이미 칠해진 회색이 그 색들을 다 먹어버린다. 어릴 적 오색 찬란하게 칠해졌던 나의 삶이 어느새 이렇게 다 회색으로 변해버렸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졌다. 나에게 시간을 덜 주지도, 더 주지도 않았다.


왜 나에게만 시간은 죄스러운 건지. 꾸역꾸역 오늘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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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등고선

발톱을 숨긴

척추를 둥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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