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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지연 Nov 13. 2022

52. 매일 다른 이유로 사랑해

블로그 내용중

요즘 남편이 퇴사하고 나날을 같이 붙어지내고 있다. 원래는 근무가 당직을 서는 일이라 격일을 함께했었다. 아침에 같이 눈을 뜨고 밥을 먹고 같이 잠든다. 신혼 초는 병원에서 보내고 퇴원하고 나서는 서로 일이 바빠 같이 시간을 못 지내 늦었지만 이제 신혼이 된 거 같다. 우리의 하루는 느지막한 오전에 시작된다. 아침에 보통 내가 배가 고프다는 말로 그를 깨운다. 그는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지만, 나의 식습관 때문에 아침을 먹게 되었다. 내가 흔들어 그를 깨우면 그는 퉁퉁 부은 눈으로 힘겹게 눈을 뜬다. 두꺼운 눈꺼풀이 부었어도 여전히 쌍꺼풀은 짙게 남아있다.


아침에 일어나 시원한 물 한 모금을 하고 침대에 앉아 배고프단 말을 연발하며 뒹굴뒹굴한다. 한 시간쯤 지나면 내가 참을 수 없는 배고픔에 예민해지면 그때야 전날 장을 본 물건들이 집 앞에 배달되어 있다. 그것을 남편이 챙겨와 요리하기 시작한다. 원래는 내가 주로 요리했었지만 까다로운 그의 입맛을 맞추기가 힘들어 내가 요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내가 보조가 되어 설거지나 뒤처리를 하는 편이 수월하다고 생각되었다.


밥을 먹고 각자의 노트북을 들고 와 거실 테이블에 앉아 적당한 영상을 틀고 각자의 일상에 집중한다. 나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다. 남편은 퇴사 후 약속한 공부를 한다. 그는 나에게 장난처럼 평생 해본 적 없다던 공부를 하느라 머리가 아프다. 나에게 종종 수학을 물어보곤 한다. 한번은 핸드폰에 전화로 녹음된 음성을 무작위로 틀었더니,

"여보 내가 이 세상에서 못하는 한 가지가 있어"

"뭔데"

"공부야. 그건 불가능에 가깝지"


그런 그가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위해서 나는 그 옆에서 일하거나 책을 읽는다. 덕분에 나의 독서량은 늘었다. 그리고 10년 만에 미적분과 적분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 나는 그를 만난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를 안 보면 보고 싶고 눈물이 나지 않는다. 그를 열렬히 사랑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옆에 있으면 안정감이 생기고 안심이 된다. 그 역시도 같이 잠이 들다 나의 코 고는 소리에 시끄럽다고 각방을 쓰는 날들이 늘어간다. 하지만 나의 엉겨 붙은 정수리에도 뽀뽀해주고 가끔은 방귀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지만, 그것도 사랑이 아닐까. 사랑이라고 모든 게 이뻐 보일 수 없다. 나는 남편을 매일 다른 이유로 사랑한다. 그 역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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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다른 이유로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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