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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지연 Nov 17. 2022

53.너의 글씨는 나를 행복하게해

지인과의 대화

나는 사람을 만날 때 작은 편지를 써간다. 긴내용이 아닐지라도, 감동이 있는 깊은 내용이 아닐지라도 간단한 안부 인사를 적어본다. 편지만으로 부족할 때는 그 상대에게 어떤 선물이 어울릴지 작은 것을 준비해가는 편이다. 가끔 장난말로 어떤 이는 나를 선물 요정이라 불렀다. 주로 차와 책을 선물하는 편인데 내가 써보고 좋았던 것, 읽어보고 좋았던 것을 선물한다.


오늘 오래된 친구를 만났다. 너무 오래 만나지 못해 서로의 이야기를 차곡히 쌓으며 시간을 보냈다. 친구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해 시와 산문이 섞인 헤르만 헤세 책 한 권을 선물했다. 역시 나의 손 편지 한 장을 넣었다. 오래 보지 못했기에 조금 긴 편지가 되었다. 친구는 내 편지를 읽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의 글씨는, 편지는 나를 행복하게 해"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여태껏 내가 썼던 많은 편지의 인사 중, 마음 따듯한 말이었다. 서늘한 가을 아침에 따듯한 온기가 전해졌다. 말은 정말 귀하다. '고마워'한 마디보다도 이런 마음을 담은 한마디가 친구를 위해 고민했던 시간을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 시간을 아까워하거나 보상받을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말이다.


선물을 하는 일은 꽤 어려운 일이다. 그 사람의 취향이 맞을까. 괜한 것을 선물하는 건 아닐까. 부담이 되지 않을까. 많은 경우의 수를 따진다. 그리고 그 취향이 사람에게 맞을 때 쾌감을 느낀다. 용기 내 선물을 전할 때 상대의 찰나의 반응을 보고 안도한다. 선물을 주고 눈치까지 봐야 한다니 피곤한 삶을 사는 나다. 그래도 오늘은 근래에 받았던 반응 중 최고의 반응을 받았기에 너무 행복하게 잠들 수 있을 거 같다.


행복하게 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한다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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