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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지연 Nov 23. 2022

62.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

아몬드 - 손평원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 청소년기의 삶의 맛은 쓴맛으로 이루어졌었다. 종일 공부만 하고 친구들과 추억이 별로 없었다. '청춘'이라는 단어에, 시원하고 청량한 사이다가 어울린다면. 나의 청춘은 약을 삼키다 잘못해 혀끝에 남은 맛이 아닐까. 아니 약은 몸에 좋기라도 하지, 나의 청춘은 몸에 해로운 쓴맛이었다. 나의 삶과 마음을 병들게 했음은 물론이거니와 그로부터 10년의 삶 또한 처연하게 무너뜨렸다. 삶은 대체로 거무죽죽한 색의 해로운 맛이었다.


이제야 좀 살 거 같은 맛이었다. 워낙 쓴맛만 먹었더니, 조금만 달아도 헤벌쭉 엔도르핀이 돌았다. 사람들의 작은 호의에도 정신 못 차렸다. 그러니 다시 돌아온 쓴맛에 금세 단물을 찾아댔다. 찰나의 단맛에 바짓가랑이까지 애끓었다. 꿀을 먹어보지 못한 꿀벌과 같았다. 꿀만 쫓는 맹목적인 꿀벌. 한번 맛본 꿀에 반해 꿀을 잊지 못한 나는 주야장천 꽃만 쫓아다녔다. 그 꽃이 설사 곤충을 잡아먹는 꽃일지라도.


사람은 여러 맛을 느낄 수 있다. 단맛, 쓴맛, 신맛, 매운맛 등. 음식을 먹을 때에도 한가지 맛이 아닌 다양한 맛이 어울리는 음식이 맛이 좋다. 인생 또한 너무 달면 물릴 것이고, 너무 시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여러 맛이 어우러진다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나는 시간에 맞는 맛을 느끼면 살고 싶다. 내가 노력한 시간이 쌓여, 느낄 수 있는 맛. 우선 부딪혀 보자. 어떤 삶이 내게 올지 모른다. 비록 쓴맛만 맛보았던 삶일지라도, 지금부터 어떤 맛의 삶을 만들지 부딪혀보자.

-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

나는 부딪쳐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

<아몬드>中 - 손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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