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지연 Nov 25. 2022

64. 심통

또간집 자막

심통이나 입술로 삐죽이면 남편을 날 유심히 본다. 쟤는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일까 레이더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화가 미치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우당탕 유리잔 한 개를 잘 못 꺼내다 소리가 나면 나의 시선이 날카롭게 자신에게 꽂힐 수도 있다. 어쩌면 옆에 앉아있다 일어나면 소파 가죽의 소리가 나의 심기를 거스를 수도 있기에, 남편은 최대한 자신을 지운다. 소리도 움직임도 무의 상태로 둔다.


"밥 먹을래?"

"다이어트하잖아"

악수를 두었다 뒷걸음질 친다. 아주 쉬운 방법으로 접근하려다가 최악의 문제에 다가섰다. 아차 싶은 남편은 금세 다른 이야깃거리를 찾는다. 그는 십 년 전 보았던 수능 때보다도 머리를 더 열심히 굴릴 것이다. 최고의 악수를 둔 터라 하얗게 지워져 버린 머릿속이 제 기능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 번씩 그런 때가 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는데 남편이 나의 졸린 무표정한 얼굴을 오해한다. 감정 없이 멍한 나를 왜 심통이 났을까 고민하고 쭈뼛쭈뼛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런 남편이 재밌어 괜히 심통이 난척한다. 그런데 밥 먹을래? 라고 묻는다면 진짜 심통이 나기 시작한다. 나를 뭐로 보고 먹을 것으로 유인(?)하는 건지 한번은 내가 엘리베이터에 갇힌 적이 있었다. 그때 울고불고 무서워한 적이 있었는데, 남편은 달려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고기를 사주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소리를 지르며 지금 고기가 넘어가겠냐며 화를 냈다. 뭐 결국 무사히 구출되어 삼겹살을 먹으러 갔지만. 모든 해결책이 고기라는 것이 자존심이 상한다.


이글을 쓴 김에 거짓 심통을 한번 부려보아야겠다. 남편은 이제 긴장을 할 것이다.

-

심통

매거진의 이전글 63. 눈물이난거야, 옆으로 누워서 눈물이 난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