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내맡기기
하루는 비가 추적추적 내려 세상을 비릿하게 만드는 날이었다.
이날도 여느 때와 같이 오전 명상을 하고 있었다.
자세를 잡고 호흡을 가다듬고
자연히 일어나는 호흡을 조심스럽게 따라간다.
일순간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와 '나'는 그곳에 온전히 존재하게 되었으나
이것도 잠시 생각 덩어리들이
슬금슬금 기어와 고개를 들어
한마디, 두 마디씩 거들기 시작한다.
이 당시 나는 무차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일종의 쓸모없는 무언가라고 생각하여
어떻게든 없애려고 아득바득 애쓰고 있을 시기였다.
매일 명상은 반복되었지만 내 의도처럼 생각은 없어지긴커녕
오히려 더더욱 시끌시끌 내 안을 가득 채웠다.
'아니 왜 명상을 해도 해도 내 머릿속은 여전한 거지?'
'진짜 머리 밀고 어디 산이라도 들어가야 하나?'
'이거 없앨 수 없는 거 아니야?'
나는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자 조금씩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다.
갑갑해진 나는 무작정 우산을 챙겨 들고 산책을 나갔다.
토독토독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소리를 들으며
빗물에 젖어 평소보다 어두워진 풍경을 보며
빗물에 진해진 흙내음과 아스팔트 향을 느끼며
아무 생각 없이 고요하게 온전히 그곳에 존재하였다.
사부작사부작 걸어가던 나는 고개를 들어 우산을 빤히 쳐다보았다.
우산은 비를 피하게 해 주지만
떨어지는 것을 막진 못했다.
빗물은 앞으로 옆으로 뒤로 떨어지고 있었다.
하늘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크기보다
우산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조금 더 커진 채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
이를 유심히 본 순간 나는 발바닥부터 척추를 타고 올라와 정수리로 터져 나오는
강렬한 에너지의 흐름을 느끼며 전율을 느꼈고
분명 같은 '나'이자만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같은 풍경, 같은 세상이지만 분명히 달라졌다.
그렇다 이를 바라보는 바로 나와 '나'가 달라졌다.
이 날을 기점으로 나의 명상은 완전히 달라졌으며
세상을 대하는 자세도 마찬가지이다.
보통 명상을 할 때 어떻게 하는지 아는가?
수많은 방법이 있지만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같다.
바로 '비움'이다.
이 '비움'을 통해 그동안 쌓아온 부정적 감정들, 부정적 기억들을
지우고 없애려고 아득바득 애쓴다.
하지만 없어지는가? 아니 더 진해지면 진해졌지 없어지지 않는다.
'없애고 싶다'라는 문장은 '나는 그것을 지니고 있다'를 전제하기에
오히려 그 감정과 기억들은 더더욱 커져만 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시각을 조금은 달리 가져 명상에 들어가야 한다.
대다수는 익숙하지 않을 확률이 크기에
처음에는 조용한 공간이나, 집이나 고요히 있을 수 있는 장소에서 하는 것을 추천한다.
혹은 푸르른 나무들이 즐비하고 즐거운 새소리가 가득한 산속도 좋고
들어오는 파도소리에 모래와 자갈들이 굴러가며 연주하는 해안가도 좋다.
정자세를 취하고 눈을 감은 채 호흡을 의도해서 하기 시작한다.
크게 숨을 마시며 들어오는 숨을 따라가며 온전히 느끼고 바라보고
크게 숨을 뱉으며 나가는 숨을 온전히 느끼고 바라본다.
이윽고 호흡은 내 안에서 저절로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되고
이와 동시에 심장 박동은 느려지며 점차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내면을 보고 있는 나와 그 내면에서 관찰되고 있는 '나'를 알아차린다.
시선을 옮겨가려던 찰나 어디선가 생각들이 쪼잘쪼잘 달려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내 글을 조금 읽은 독자라면 알고 있다.
관찰자가 있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듣는 자가 있기에 들린다는 것을 말이다.
이를 알아차리고 의도된 생각을 내 안에 조용히 울린다.
'나는 기억을 관찰하는 관찰자이지 기억 자체가 아니다'
'나는 생각을 듣는 듣는 자이지 들리는 생각 자체가 아니다'
'나는 감정을 느끼는 자이지 감정 자체가 아니다'
'이는 들려오고 보이는 기억과 생각이며 나는 이것을 보고 있다'
'내가 관찰하기에 존재할 수 있다'
언어를 이용하여 이름을 붙인 그 순간 한 발 물러나 바라보기 시작한다.
들려오는 생각들, 떠오르는 기억들을
한 발 물러나 온전히 바라보며 관찰하는 모습을 심상화한다.
가만히 관찰되던 생각과 기억들과 감정들은
어느새 흘러가 없어진다.
모든 것이 흘러가 없어졌지만 또렷하게 나는 그곳에 있음을 느끼고 있고
내면에 있는 그 공간도 온전히 느끼고 있다.
그 공간은 깊이를 알 수 없으며 높이도 알 수 없고
얼마나 넓은지 가늠이 가지 않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무한히 넓고 높은 우주를 닮은 그 공간이 바로 '나'였다.
순간 알 수 없는 기운과 기분과 에너지가 올라오기 시작하며
발 끝부터 손가락, 머리끝 몸 구석구석 퍼져나가더니
이내 내 몸에 한정되지 않고 온 세상에 퍼져나가 연결된다.
흘러넘치는 에너지와 전율에 이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느려진 호흡은 다시금 빨라지며 눈을 뜬다.
당신은 여전히 책상 앞에, 의자 위에, 방 안에 앉아있지만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내맡기기 명상은 어떤 일이나 상황에 있어
일어나는 호불호, 떠오르는 생각들을
일련의 과정들로 한 발 물러나 온전히 바라보고 흘려보내고
이내 무한한 넓은 공간이 내 안에 있음을 알고
이것은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세상이 펼쳐 보여주는 상황들을
나와'나'의 시점으로 온전히 순응하고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명상이 익숙해진다면
굳이 조용한 장소나 자연에 들어가지 않아도
모든 순간에서 물러나 바라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되면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은
세상이라는 축제를 향해 가는 즐거운 발걸음 되고
우주라는 신비로운 곳을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 가는 여행가가 된다.
우주와 세상이 나 임을 알고
이를 온전히 즐기는 마음으로
펼쳐지는 인생을 감사하고 즐기는 것 이것이 '내맡기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