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 니아와 양파 아저씨

두 번째 조언, 양파 샐러드

by SONEA

레스토랑 '크라이 세'에서의 이상했던 서비스 타임이 어느덧 끝나고

니아는 주방 마감을 시작했다.

주방 입구 오른쪽에 있는 냉장고 옆 선반에서

M사이즈 검정 라텍스 장갑을 끼고 사용한 작업대와 화구와, 팬을

주방세제로 기름때를 제거하고, 알코올 소독제를 뿌려

파리도 미끄러질 정도로 말끔하게 정리하던 중 오픈된 주방 밖으로

조인성 실장의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 장갑 멋진데? 오늘은 누구를 땅에 묻어버리고 오는 길이야?

난 개인적으로 임룡태였으면 좋겠다~ '

조인성 실장의 농담에 니아는 마감 청소가 힘든 것도 잊어버렸다.

'에이~ 기왕이면 1+1이라고 둘 다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니아는 해맑게 웃으면서 한 술 더 뜨며 이야기했다.

'음 그렇지. 한 명은 정이 없긴 해~ 오늘 한 잔 해야지?'

평소라면 냉큼 따라갔을 니아였지만

오늘은 집에 돌아가할 일이 있었기에 거절했다.

'죄송해요 실장님, 오늘은 제가 일이 있어서 다음에 드시죠!'

'친구도 없는 놈이 일은 무슨, 형님이 먹자고 하면 고민도 안 하고 따라와야지 어?

그래 어쩔 수 없지. 알겠다~'

조인성 실장은 아쉽다는 걸 티 내기 싫었는지 억지로 니아를 비꼬며 이야기했다.

'넵 물론입니다,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아니~ 안 볼 건데~'

아쉬움이 묻어나는 터덜거리는 발걸음이 멀어지자 이번엔 임영미 매니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니아야 마감은 다 끝났어? 다 했으면 이제 퇴근하자'

니아는 퇴근이라는 말을 듣기 무섭게 대답도 하지 않고 꾸벅 인사만 한 뒤

나무 계단을 뛰어 내려가 1층 카페 밖에 주차해 둔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서둘러 시동을 걸고 자신의 집으로 빠르게 운전하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하자 니아는 자신의 짐을 던지듯

침대 옆에 놔두고 씻지도 않은 채 주방으로 갔다.

불을 켜고 도마를 꺼내 싱크대 옆에 펼쳐두고선

오른쪽 주머니에서 낮에 받은 양파 껍질을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분명 처음 양파 아저씨에게 받을 땐

아무렇게나 벗겨진 것처럼 보였지만

집에 와 꺼내보니 접혀 있는 모양이 이상하게도 정갈했다.

'오늘은 이걸로 만들 거야?'

'아 깜짝이야. 언제 왔어요? 인기척 좀 해요..

아 인기척이라는 말은 맞지... 않겠구나 아무튼 놀랬잖아요'

니아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양파 아저씨가

도마 너머로 짤막한 살짝 뒤로 기울어 냉장고에 기대 서 있었다.

'뭐.. 아무튼 네. 두 번째 음식이네요'

'음.. 양파가 메인은 아니네? 메뉴도 가벼워 보이고'

양파 아저씨는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띠곤 니아가 꺼낸

재료들을 천천히 살펴보더니 이야기했다.

'네 오늘은 배가 별로 안 고프기도 하고.. 곁들여서 쓸려고요'

니아는 자신의 짐에서 칼을 꺼내고 도마에 올려둔 양파 껍질을 잡았다.

왼손으로 양파 껍질을 잡고 가볍게 칼을 대자

양파가 '찌익' 소리를 내며 얇게 갈라졌다.

작은 양파 껍질 한 조각임에도 눈이 조금 매웠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런 거 만들고 싶어서 시작했잖아.

사람들이 먹고 해맑게 웃는 게 보기 좋아서.'

양파 아저씨는 냉장고에 기대 있던 자세에서 자신의 짧은 몸을

똑바로 일으키며 이야기했다.

니아는 양파를 얇게 채 썰며 이야기했다.

'그렇죠.. 아르바이트할 때 느낀 건데, 저를 처음 보는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제 음식을 먹고 순수하게 즐거워하며

웃는 표정을 띠는 게 보기 좋았어요'

니아는 자신이 처음 알바를 하며 요리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된 이유를 나지막이 설명했다.

그때는 이게 전부였다.

1주일에 두 번 딱 주말 런치 타임에만 출근하는

짧은 알바였지만 니아는 출근하는 2일을 1주일 내내

오매불망 기다릴 정도로 정말 좋아했다.

달마다 들어오는 아르바이트비도, 레스토랑 음식도,

레스토랑에 있던 셰프님과 사장님도 아닌

단지 손님들이 즐기는 모습을 보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하는 날을 기다렸다.

양파 특유의 매운맛을 살짝 빼기 위해

싱크대 위 선반에서 작은 유리 볼을 꺼내 찬물을 담고

얇게 채 썬 양파를 넣었다.

물에 손을 넣고 휘저을 때마다 양파가 부드럽게 풀리며

자유롭게 둥둥 떠다녔다.

'음.. 사실 여기 사람들도 처음엔 그렇게 말했어요'

니아는 손으로 양파를 계속 저으며 말했다.

'자기들도 손님들이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아

레스토랑을 만들었고, 여기도 그런 공간이 될 거라고 했어요'

양파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니아의 곁에 서서 들었다.

니아는 이러한 침묵이 익숙했다.

'.... 근데 점점.. 아니 첫날부터 무언가 이상했어요'

자유롭게 떠다니던 양파 슬라이스 조각들을 건져

손으로 물기를 가볍게 짜며 이야기했다.

'손님... 얘기는 늘 하긴 했어요, 근데 계약서를 쓰고

이곳에 오니까 하는 이야기가 손님에서 전부 돈 얘기로 변했어요'

실제로 처음과 달리 니아가 계약서를 쓰고

가 오픈 기간 레스토랑 크라이 세 에서 임주상 대표, 임룡태 팀장,

임현미 과장, 임영미 매니저랑 모두 모여 이야기할 땐 마진을 위해

음식 가격은 더 올리고, 중량은 줄이고, 들어가는 재료도 바꾸고,

인건비도 아끼기 위해 최소한의 인원만 구성하고

약속했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생은 구하지 않았다.

이 많은 이야기가 이들이 앉은 테이블 위에서 오갔지만

정작 레스토랑에 방문하여 음식을 먹은 손님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손님은 웃었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 그리고 또 웃긴 게 뭔지 알아요? 처음에는 안 시킨다고 하더니

손님이 조금만 없고 한가하잖아요? 그럼 리조트 잡무를 시켰어요'

니아는 찬장에 넣어둔 회색 도자기 그릇을 꺼내며 이야기했다.

'나 진짜 많은 일을 여기서 했어요. 아 물론 요리 말고.

객실 청소도 해보고, 수영장 청소도 해보고, 빨래 정리도 해보고,

세팅도 해보고... 지금 생각해 보니 다 해봤네요'

그릇 위에 물기를 짠 양파 슬라이스를 조심스럽게 올렸다.

'근데 그 와중에 같이 일하는 임영미 매니저가 잠깐 어디 가잖아요?

그럼 1층 카페까지 혼자 커버했어요.

이건 좀 웃긴데 레스토랑에서 식사하신 손님들이 1층 카페에서

음료 주문할 때 위에서도 밑에서도 저를 보곤 엄청 놀랐어요.

한 번은 손님이 혼자 다 하는 거냐고 물어보시기도 했어요'

니아는 싱크대 밑 하부장을 열어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꺼내

그릇에 담아둔 양파에 가볍게 둘렀고, 양파는 반짝였다.

'그게... 그 모든 게.. 일의 연장이고 당연한 거래요..'

니아는 웃긴 이야기라 하면서도 웃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근데 이유가 웃긴데 뭐라는 지 알아요? 사람 쓰기 아깝데요.. 사람 쓰기가'

양파 아저씨는 침묵을 유지하며 가만히 듣다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고개를 오른쪽으로 갸웃거리며 이야기했다.

'그럼 거절하면 됐잖아. 어째서 거절하지 않았지?'

니아는 올리브 오일을 넣어두곤 이번엔 소금 통을 집어 뿌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곳이 좋은 곳이라고 했고, 이런 기회도 없다고 했어요'

톡,

톡,

'다들 가족 같이 사이가 좋다고도 했어요'

톡,

'그러니까 너 아니면 안 된다고,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냐고'

니아는 가방에서 주방에서 챙겨 온 로메인을 꺼냈다.

이번엔 칼로 썰지 않고 손으로 툭 툭 뜯어 손질했다.

'근데.. 진짜 가족인 줄 아는지 나중에는 개인적인 일까지 부탁하더라고요'

손질한 로메인을 흐르는 물에 씻으며 니아는 말을 이어나갔다.

'뭐.. 임혜인 데리러 가라... 데리고 오라.. 자기가 먹을 소고기 좀 사와라..'

니아의 손 안에서 물줄기를 맞으며 로메인은 양 옆으로 흔들렸다.

'이 모든 건 근무에 포함되지 않은 일이었지만 모두 근무의 연장이래요'

대답 없이 가만히 듣던 양파 아저씨가 이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대답했다.

'그건 좀..'

'그렇죠..?'

니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근데 다 이곳을 위해서고 나를 위해서라고 계속 이야기했어요'

손질한 로메인의 물기를 가볍게 털어내고 흰색 원형 접시를 하나 더 꺼내

로메인을 올리고 그 위에 재워둔 양파를 얹었다.

'근데.. 그렇게 계속 말하고 들으니까 이상하게 거절이 안 되더라고요..'

'왜?'

'계속 이곳은 좋은 곳이고, 이런 기회를 주는 곳도 없다고

다 같이 미팅할 때마다 이야기하니까..'

니아는 로메인과 양파 위로 후추를 갈았다.

'여긴 특별하다.. 여긴 다르다.. 운 좋은 거다.. 고마워해야 한다..'

후추의 향이 주방에 퍼졌다.

'그래서 든 생각은 힘들어서 힘든 게 아니라

내가 잘 모르고 부족해서 힘든 것처럼 느껴졌어요'

양파 아저씨는 담담하게 말하는 니아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침묵하다 물었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참을 수는 있었겠네, 힘들긴 하지만'

천천히 움직이던 니아의 손이 멈췄다.

'.... 임룡태 팀장이 제 부모를 들먹이며 뭐라 했어요'

짧은 한 문장이었지만 주방의 공기가 달라졌다.

'수영장 청소 할 때였는데... 기계 쓰고 하는 거 안 해봤냐고 하면서

부모한테 뭘 배웠냐.... 부모가 안 가르쳤냐... 진짜 생각 없다고..'

니아는 이번엔 스테인리스 볼을 꺼내 드레싱을 만들며 이야기했다.

'뭐.. 맞아요.. 그때 못한 건 맞는데.. 난 수영장 청소 기계를 그때 처음 봤고,

그런 일은 배운 적도 한 적도 없었어요... 레스토랑 관련 일만 배우고 공부했지..'

샴페인 식초에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과 약간의 머스터드 넣고 마무리했다.

'근데 이때 알았어요. 여긴 사람을 존중하는 곳이 아닌... 음 기계와 부품으로 본다는 걸'

만든 드레싱을 가볍게 두르며 붓자 샐러드가 완성됐다.

구성은 단순했지만, 깔끔하고 비주얼이 나름 괜찮았다.

'이걸 임영미 매니저한테 말해봤지만 제가 잘못한 거라고 말하더라고요.

이 날 이후로 의지한 사람은 조인성 실장님 한 명뿐이에요'

양파 아저씨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을 싫어하게 된 거야? 그렇게 감정적이게 되고?'

니아는 완성된 샐러드가 담긴 접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 맞는데 아니에요'

'그럼?'

'이제는 요리까지 싫어지려고 하고 있어요..'

양파 아저씨는 조용히 말했다.

'... 그런 것치곤 이건 잘 만들었네'

니아는 싱크대 왼쪽 식기 통에 있는 은색 포크를 하나 꺼내 들었다.

'... 그래서 더 싫고 짜증 나요..'

포크로 샐러드를 깊게 푹 찔러 들어 입에 넣었다.

샴페인 식초의 샹큼함과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의 향긋함이

로메인을 통해 들어왔고, 약간의 매콤함과 식감을 양파가 더해주었고,

맛은 분명 괜찮았다.

'그거 아세요..? 이상하게 좋아했던 걸 미워하게 되는 순간

이 감정이 제일 오래 남더라고요..'

니아는 애써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슬픈 감정을 온전히 감출 순 없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을 좋아할 수 없어요'

양파 아저씨는 니아의 웃는 표정 너머로 숨겨진 깊은 슬픔의 바다를

눈치챘지만 이 점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럼 다음엔 뭘 만들어 볼 거야?'

니아는 양파 아저씨의 질문에 포크를 내려놓고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음.... 아직은 모르겠어요...'

'근데 뭘 만들긴 할 거지'

니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왜?'

니아는 천천히 답했다.

'아직은 완전히 망가지진 않았고, 여전히 손님들의 눈은 반짝이니까..'

주황색 주방 불빛 아래 샐러드는 조용히 빛났다.

그리고 그 빛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