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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영 May 28. 2024

고기보다 사랑

새벽#29일차 잠언 15:1-17

(잠언 15:1-17)
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2.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3.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4.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5.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
6. 의인의 집에는 많은 보물이 있어도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 되느니라
7.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지식을 전파하여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정함이 없느니라
8.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9.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
10. 도를 배반하는 자는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요 견책을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이니라
11. 스올과 아바돈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리요
12. 거만한 자는 견책 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하느니라
1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14.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하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
15.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16.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7.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어릴 적 집에서 식사를 하고나면 늘 어머니께서 후식으로 과일을 담아 내오셨다. 그 중에서도 설탕을 뿌린 대저 토마토는 내가 좋아하는 간식 중에 하나였다. 토마토가 있는 날이면 동생이 식사를 마치기 전에 허겁지겁 먼저 밥을 먹고 토마토를 삼키듯 입에 넣었다. 식탐이 많았던 내가 먹는 것에 욕심을 내는 것은 누가 가르쳐준 적 없었는데도 희안하게 진심을 다하게 된다. 반대로 먹을 것을 함께 나눠 먹으라는 것은 매번 배우지만 말처럼 쉽게 되지 않고 내겐 참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 옛 말에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참 지혜로운 말이다. 단지 나눠먹는다는 것에 대한 교훈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육신의 풍족함보다 마음의 풍요를 누리는 것이 더 낫다는 이야기이다.


오늘 말씀에 의인과 악인의 말과 행동을 대조적으로 비교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바로 17절에 있다. 식탐이 많은 나에게 고기보다 채소를 먹는게 낫다니! 하나님,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 이십니까…! 이 말씀은 사실 먹는 것 자체만 두고 하시는 의미보다는 아무리 풍족해도 서로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아니하며, 우리가 비록 조금씩 모자라고 부족하게 살아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아름답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곧 우리의 형편의 나아짐만을 추구하기 보다 서로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습이라고 해석이 되었다.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지금의 나에게 이 말씀은 굳이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이 되었다. 저녁 식탁에 고기가 올라오면 아이들이 치열하게 서투른 젓가락질을 하며 우걱우걱 열심히도 먹는다. 어찌나 복스럽고 사랑스러운지, 그 모습을 바라만 봐도 참 행복하다. 내게 남은 건 고기 한 점 없이 그저 김치뿐이라고 해도 내 식탁이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고 늘 풍족하게 느껴진다. 먹는 걸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말씀이 처음에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었지만, 아마 아빠라면 다들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아내에게도 그 마음은 마찬가지다. 아내가 원한다면 어떠한 손해도 손해도 여기지 않고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말씀을 묵상하며 한 가지 깨닫는 것은 우리 삶 속에서 채소를 먹을 것이냐 고기를 먹을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면 그때부터는 채소이든 고기든 상관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의인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내가 주를 사랑하기만 하면 마의 말과 행동은 잠언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기준에 자연스럽게 한 발 다가가게 될 것이다. 사랑 없이 기준을 먼저 생각하고 지키려고 하면 그것은 아마도 바리새인의 모습과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새벽 잠을 깨우는 것도 행위를 목적에 두었다면 나는 여지없이 바리새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랑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 날마다 기도해야겠다.


“having steak and salad with love”(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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