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102일차 에배소서 2:14-18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지난 성탄절에 아이들과 집에서 Netflix를 통해 <클라우스(Klaus), 2019> 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한 편 봤다. 최초의 Netflix 오리지널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인 <클라우스>는 모두가 잘 아는 산타클로스를 소재로 하고 있다.
극 중에서 '크럼'과 '엘링보'라는 두 가문이 오랜 역사 속에서 서로 대립하며 갈등이 고조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만나기만 하면 싸우고, 이유없이 미워하는 그 둘 사이엔 언제나 커다란 장벽이 있었다. 그것은 절대 어느 한 쪽에서 먼저 허물 수 없는 자존심과도 같은 것이며, 화해의 제스처는 이들에게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마치 원수지간 처럼 이들은 영원히 서로 함께할 수 없는 존재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종극(終極)에는 이들이 서로 화해하게 되는데, 물과 기름같았던 이들을 서로 화해하도록 만든 것은 양쪽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어떤 대상이 생겼고, 그 영역 안으로 발을 내딛을 수 있도록 만든 소소한 노력과 이벤트들 덕분이었다.
오늘 본문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언급하며 서로 함께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이들이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들 모두에게 구원이라는 것이 율법이나 다른 어떤 노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보혈'이라는 동일한 은혜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사실 때문임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통해 이 둘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고 교회 공동체라고 하는 한 몸의 지체를 이루도록 한 것이다.
때로는 결코 한 편이 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들과의 연합과 연대가 필요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동일한 위기를 맞이하거나, 동일한 가치와 방향을 바라볼 때 가능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국가와 국민이라는 가치를 가운데 놓고 바라보자. 만약 이것이 누가보더라도 동일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면, 이제는 동일한 가치를 바라보며 같은 방향을 향해 함께하는 방법을 떠올려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