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 골로새서 1:24
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주인 의식을 가지라"는 말은 내가 중고등학생일때는 교장 선생님께 들었고, 대학교과 군대에서는 물론, 직장에와서는 매년 신년사(新年辭)에서 듣게되는 말이다. 처음엔 '내가 이 회사의 주인이라는 건가? 자기 마음대로 하지도 못하는 주인이 어디에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잘못된 생각이다. 주인의식(主人意識)이라는 것은 주인 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조직을 자신의 것과 같이, 자신과 같이 소중히 여기며 뜨겁게 사랑하고 헌신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늘 말씀 속에서도 자칫하면 교회를 개인이 소유하는 것 처럼 오해할 수 있으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성도로서 헌신하려는 다짐으로 이해해야 한다.
공동체나 조직이 힘들고 어려울 때에 팔짱껸 채로 관망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 아니면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나의 헌신을 통해 한 걸음이라도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인지.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존중받아야 하지만 후자의 구성원이 많은 조직일 수록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빠르게 극복하며 어려운 난관이 예상될 때에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지금까지 내가 지나온 많은 공동체와 조직 안에서 때로 나의 모습은 관망(觀望)자일 때도 있었고, 양 손을 걷어부치고 나설 때도 있었다. 관망자일때 나는 마치 손님과도 같았지만, 후자일 때 나는 비록 땀흘려야 했지만 그래도 내가 이 조직에 깊이 관여한 주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우리 회사', '우리 교회' 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생각할 때보다 더 강력한 유대감 같은 것이 생겼던 것 같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그가 달리기를 매일 하다보면 관조(觀照)와 같은 것이 우러난다고 표현한 말이 있다. 주인의식이라는 것은 의식적인 활동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작은 일에도 조금씩 헌신하다 보면 나의 자아에 투영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화려하고 거대한 영향력을 끼치려고 애쓰기 보다 모퉁이 돌처럼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제자리에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