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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사원 Jan 12. 2019

친구의 의미



친구. 우린 친구니까.


친구라는 이름은 또래 아이들이 모여있는 학교에서 특히나 큰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였는지 친구와 밥을 먹고, 친구와 팔짱을 끼고 같은 길을 발맞춰 걷는게 나에겐 과분한 일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 누구도 나에겐 과분한 사람이었다. 나는 약한 상대이니까 알게 모르게 무시당하거겠지 넘겨 짚었다.


친구와 싸우지 않는 것이 학교생활의 전부였던 때도 있었다. 아무런 트러블 없이 사이좋게 지내면 나 자신의 가치도 올라갈거라 생각했다. 속으로 상처가 곪든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 같은 것과 친구를 해주는 친구의 기분이 가장 중요했다. 눈치를 보고 친구의 기분을 내 기분보다 더 중시했다.


진짜 친구는 없다고 생각했다. 모두들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나에게 더 이득인 사람을 친구로 선택한다고 믿었다. 의무적으로 매일 같이 가야하는 학교에서는 친구의 의미가 더욱 거추장스럽다. 의미따윈 중요치 않다. 그냥 같이 다닐 친구가 있으면 그만이다. 남들에게 친구없는 애로 보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마음을 나눌 수 있던 좋은 친구와도 바보같이 진짜 관계를 맺지 못했다. 같이 다니기 창피하다는 이유로 친구를 피한 적도 있었다. 같이 다니기 창피하다는 이유로 친구가 되지 못한 적도 있었다.


'같은 학교'라는 평등사회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고 나니, 진짜 친구도 다 무엇인가 싶다. 밥 먹고 영화 보고 수다 떤다고 해서 친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술 한 잔 기울였다고 해서 친구가 되는 것도 아니다. 힘들 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도 친구는 아니다. 아무리 친구라도 각자 몫의 힘듦과 아픔이 있는 법이니까.


단순하기 그지없던 친구의 의미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평생 친구라 생각했던 사람이 평생 친구가 아니게 될 수도 있고, 스쳐 지나간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도리어 소중해 질 수도 있다. 소중함의 무게는 제각각이겠지만.


사람 관계는 가볍고도 어렵다. 너무 회의적이고 싶진 않은데.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며 사는 것은 아닐텐데. 나도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일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이 '친구'에 대해 사전처럼 같은 정의를 내리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을 견주어 볼 것 없이 친구와 친구 아닌 사람의 관계가 깔끔하게 구분될 수 있다면 좋을텐데. 복잡한 마음을 이야기하지도 못하면서 혼자 상처받고 혼자 벽쌓는 일이 또 다시 반복되고 있는 기분이다. 엉망이다. 이런 나를 친구라 생각해주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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