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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사원 Nov 16. 2019

빈야사

2019년 이야기


2019. 9. 17 에세이

빈야사, 안 쓰던 힘과 근육 쓰기


호흡이 짙고 몸의 중심, 특히 배에 힘이 들어가는 요가는 요즘 나의 힐링 운동이다. 삐뚤던 자세도 발라지는 것 같고 땀도 비 오듯 쏟아지니 그것도 나름대로 쾌감이다. 다른 운동은 몰라도 요가는 재미로 한다. 일주일에 3번 요가원에 가는 날엔 퇴근 30분 전부터 주섬주섬 마무리하고 나갈 채비를 한다. 정시 퇴근에 운동까지, 여러모로 최고다.


오늘은 빈야사 수업을 들었다. 저번에 들었던 빈야사가 너무 힘들어서 아쉬탕가를 듣고 싶었는데, 망할 놈의 메일 한 개 더 보낸다고 30분 늦게 퇴근했더니 빈야사 시간이었다.


수업 중에 다리를 엑스자로 꼬아 엎드렸다가 팔을 뒤집은 채로 손바닥을 바닥에 대고 팔꿈치를 굽힌 다음에 팔꿈치와 배꼽을 마주하며 엉덩이를 들어 올리는 자세는, 팔 힘으로 버티는 건 줄 알았더니 배 힘으로 버티는 거였다. 말로 설명하니 기괴한데 선생님의 말씀을 뒤쫓다 보면 저런 동작이 나온다. 나는 팔로 몸을 지지하는 건 줄 알고 순간 까무룩 죽을뻔했다. 하지만 배에 힘을 주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에 배에 힘을 주고 턱을 바닥에 댄 다음 조금이나마 엉덩이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선생님은 안 쓰던 힘을 쓰려다 보니 덜컥 겁부터 먹게 되어 더 무서운 거라고 했다. 그래도 처음 한 동작치고는 잘했다고 해주시니, 난 초등학생처럼 다음번엔 더 잘해야지 맘먹었다.


요가를 마치고 나면 언제나 땀범벅이다. 회사 근처 주택가에 위치한 요가원에는 집 앞 마실 나오듯 요가하러 오는 분들이 많은데, 5분, 10분 거리의 집에 가서 바로 땀을 씻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난 항상 땀범벅인 요가복을 벗고 다시 옷을 갈아입은 다음 한 시간 거리의 집에 도착해서야 씻는다. 하지만 찝찝함도 잠시, 혼을 쏙 빼놓는 요가 수업 덕에 오늘 하루 뭐가 제일 고단했고, 무엇이 날 괴롭혔던지 까맣게 잊게 되어 행복하다. 그래서 집에 가는 길은 항상 시원하고 경쾌하다.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는 날엔 요가원부터 지하철 역까지 20분 정도 걷는길이 두 배, 세 배나 더 상쾌하다.


요가원에서는 요일마다, 시간마다 다른 수업을 한다. 나는 퇴근 후에 요가원에 가니까 저녁 타임 수업을 골라 듣는데 수업마다 선생님도 다르고 짚어주시는 포인트도 조금씩 달라서 같은 선생님과 같은 수업을 해도 항상 새롭다. 수업 후엔 하루 이틀 정도 뻐근함이 지속된다. 평소 하지 않던 자세로, 쓰지 않던 몸의 부분을 쓰기 때문이다. 가령 발등이나 허벅지 뒤쪽 근육, 아킬레스건, 팔뚝, 팔꿈치 같은 것들은 아직도 여간 어색하다. 열명 남짓한 요가원 사람들 중에 나만 안 되는 동작도 있고 모두가 포기할만큼 세상에 이걸 어떻게 하지 싶은 동작도 있다.


그러나 회가 거듭될수록 그 이상한 걸 해내는 나를 발견한다. 낯설던 것들이 금세 친숙해진다. 일주일에 세 번, 한 시간 수업일 뿐이지만 최선을 다해 집중하는 나의 노력이 빛을 발하기도 하더라. 어색한 것들에 익숙해지는 기분과 고단한 하루 끝이 마무리되는 이 순간이 마음에 든다. 되도록이면 오래 습관처럼 남아 요가가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야근하지 말고 자주 가자. 요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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