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일했던 직장 동료 중에 유난히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말을 하는 A가 있었다. 그녀는 12년을 같이 일한 가족같이 친하다는 동료 B에게도 거침없이 입을 뗐다. B의 셀카 사진을 보고얼굴이 크고 넙데데하다느니, B가 달라붙는 옷을 입고 오는 날엔 눈 버렸다느니, B가 "이걸 살까?" 물어보면 "돈도 없으면서 무슨!" 콧방귀를 뀌며 무시하듯 말하는 소리가 자연스레 이어졌다.
옆에서 듣는 나까지 기분 나쁘게 만드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B는 A의 말에 아무렇지 않게대답하며넘어가곤 했다. 당사자가 가만히 있는데 내가 끼어들 수는 없어 나는 속으로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A는 친하다는 B에게 상처되는 말을 하는 걸까? B는 왜 저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는 거지?'
하지만 대놓고 물을 수는 없었다. 일 한지 한 달도 안 된 나는 이제 막 치과 분위기를 살피며 적응 중이었다. 굳이 두 사람 일에 말을 꺼내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에도 A의 B를 향한 비방하는 소리는 거의 매일 계속되었다. 나 역시애써 무시하며 치과에 적응해 갔다.
지내다 보니 A를 대하는 B에게도 이해가지 않는 점이 있었다. B는 A를 우쭈쭈 하는 듯한 말을 자주 하곤 했다. 문제는 그 말이 내가 듣기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말들이라는 것이다.
늘 하는 말은 비슷한 맥락이었다. B는 A를 볼 때마다 애교 섞인 목소리로 "오늘따라 얼굴이 왜 이렇게 쪼그만해졌어! 얼굴에 살이 쏙 빠져서 홀쭉해져 버렸네!", 아니면 "우리 A! 배가 쏙 들어갔네! 살이 너무 빠진 거 아냐?" 걱정스레 A에게 말하면서 나의 의견을 굳이 물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나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겨우 고개를 끄떡이며 자리를 피하곤 했다.
왜냐하면 A는 누가 봐도 통통을 넘어서는 뚱뚱한 몸매의 소유자였는데, 내가 보기엔 얼굴이나 배나 조금의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기분 좋으라고 웃으면서 거짓 섞인 아부성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거기서 아니라고 하면 A의 기분이 상할 테지만, 거짓말을 못하는 나의 성격에 하얀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B의 말에 번번이 자연스레 동의하지 못했다.
다행히 내 반응은 신경 쓰지 않고 A는 B의 아부성 말에 늘 화를 냈다. 살 빠진 거 없는데 왜 그런 말을 하냐며 B를 가볍게 주먹으로 때리며 성질을 있는 데로 냈다. 하지만 B는 볼록 튀어나온 A의 배도 귀엽다고 하면서, 우쭈쭈 하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럼 다시 A는 B에게 화를 내고, 반복되는 그 모습이 나로선 시트콤같이 느껴졌다. 그 후에도 계속 B가 그런 아부성 말을 꺼낼 때마다 나는 옆에서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나중엔 해결책으로 생각한 게 그럴 기미가 보이면 슬며시 자리를 피하기로 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A는 나에게도 똑같이 비방하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가슴이 작다느니, 키가 자기보다 작다고 무시하는 말을 하는데,나 역시 그녀에게 화를 내지 않고 어색하게 웃으며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그동안의 B의 반응이 이해되었다. 어쩔 수 없었다. 함께 일하는 동안 A의 소심하고 뒤끝 있는 성격을 보면 말을 꺼내는 순간, 그녀와의 관계가 껄끄러워질 게 눈에 훤히 보이니까 말이다.
내가 A의 성격을 확실하게 확인하는 계기가 된 일이 있었다.
그녀는 같이 일한 지 일 년 정도 지난 후, 내가 초기에 했던 말에 기분 나빴었다고 말했다, 뭘 하라고 일을 시켰는데 그냥 하면 될 것을 '왜 해야 돼요?' 말대꾸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벙졌었다고 말하는데, 안타깝게도 그 일이 내 기억엔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나에겐 완전히 잊힌 사소한 해프닝 정도의 일이 그녀에겐 마음에 담아 둘 정도로 두고두고 회자될 일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A에게 "상처가 되었다면 미안해요. 다음부턴 그런 말은 안 할게요!"라고 말했다. 나는 이 건에 대해서는 사과했으니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A에겐 끝이 없었다. 나는 그녀와 일하는 동안 귀에 딱지 앉듯이 셀 수 없이 이 문장을 들었다. '왜 해야 돼요?'
이 한 문장에 기분이 나쁘다는 A에게 그동안 내가 들은 기쁜 나쁜 말들을 말하면 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성격을 알고 나니 평화로운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A의 비방 어린 말을 들어도 그냥 웃으며 넘어가기 일쑤였다. 나는 평화주의자였다.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고, 굳이 다른 사람을 상처 주는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상하니 하지 말라고 A에게 말할 수도 없었다.
대신 속으론 나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나 역시 A의 외적인 면을 꼬집어 말해서, 괜히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A와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자존심도 없이 A의 눈치 보는 거냐고 한다면 맞다. 나는 나의 자존심보다 직장생활의 평화를 선택한 것이다.
거기서 나는 4년을 일했는데, 그동안 A의 비방은 일정한 기간을 두고 반복되었다. 그 말들을 무심하게 넘어갈 정도로 익숙해진 반면, A 와는 친해질 생각이 없어 자연스레 거리를 두고 지냈다. 직장 동료로서의 관계만을 유지하면서 어쩔 수없이 편한 현실에 안주하고 일하고 있던 내가 더는 참지 못한 순간이 왔다.
같이 해야 될 일을 어느 순간부터 A가 하지 않는 걸 보면서, 나는 A의 게으름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같은 일을 나만하고 A는 피하고 있으니 조금씩 쌓인 불만이 터져버린 것이다.
더는 참지 못하고 A에게 말했다. 맡은 일을 분담해서 확실히 역할을 정해서 하자고. 나름 A의 성향을 생각해서 최대한 A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좋게 말을 건넸다고 생각했다. A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의했다. 나는 이제 이 문제에 대해선 잘 해결됐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다음날부터 A의 싸늘한 반응이 시작됐다. 말을 걸어도 전과는 확연한 온도차가 느껴졌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내 제안에 기분 나빴는지 A에게 물었는데, 그녀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싸늘한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서로 역할을 분담해 일을 해서 몸은 편해졌지만, 마음은 불편해졌다. 몇 번 A에게 말을 걸며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지만, 한 두 번이지. 계속 그녀의 비위를 맞추고 싶지 않았다. 그 어색한 분위기가 반년 정도 이어졌다. B도 우리 사이를 풀어줄 수 없었다. 그녀는 A의 비위를 맞추기 급급할 뿐이었다.
결국 그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그만뒀다. 더는 A의 눈치를 보며 일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나는 사회생활, 특히 인간관계의 힘듦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결국 A와 B, 그리고 나는 코드가 전혀 맞지 않았다. 그들은 대화코드부터 잘 맞았고, 나는 그들의 대화코드에 끝까지 적응할 수 없었다. 그들이 웃으며 농담으로 하는 말들을 진담으로 받아들였다. 나로선 그런 농담을 왜 하지? 그런 말을 하는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자연히 둘 사이에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거짓말에 억지로 맞춰주며 웃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가짜 웃음으로는 서로에게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뿐이다.
어쩌면 그랬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가면을 잘 쓰고 있는 거 아닐까. 나 역시 다음엔 싫어도 가면을 잘 써야 하지 않을까. 문득 회의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