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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가 Apr 18. 2024

2. 곰양, 눈물이 많다

 첫 직장은 원장 3명, 실장 1명, 코디네이터 1명, 진료실 7명인 꽤 규모 있는 치과였다. 거기서 막내로 일하면서 별별 일이 많았는데, 잊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너무너무 억울해서 죽을 뻔한 사건이다.


 일한 지 반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치과는 매일 정신없이 바빴다. 그중 일주일에 두 번 야간을 하는 날차트 쌓이는 속도달랐다. 건이 터진 그날 역시, 환자는 쉴 틈 없이 미어터졌고, 나는 체어에 앉아 기계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우연히 차트를 가져오던 코디네이터 언니 S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별생각 없이 잠시 S 쪽을 바라봤고, S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 순간 멈칫했다. 몇 초 정도 서로 마주 보다가 S는 들고 온 차트들을 내려놓고 데스크로 돌아갔다. 나는 속으로 '빨리 저 차트를 다 쳐내고 퇴근하자!'하며 힘을 냈다.


 마치는 시간이 다 되어갈 때쯤, 갑자기 실장이 나를 휴게실로 불러냈다.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미 안에는 S와 실장이 먼저 앉아있었다. (휴게실은 누울 수 있는 방타입이다.) 나는 신발을 벗고 조심스레 그들과 마주 앉았다. 사실 막내직원이 실장과 얘기할 일은 잘 없었기에 나는 잔뜩 장한 채였다.

 실장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언성을 높여 말했다.  


 "너, S가 그러던데, 차트 많이 가져갔다고 째려보는 건 아니지 않니? 환자가 많아 힘들어도 그렇지! 언니를 왜 째려봐!"


 나는 순간 벙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실장 옆에서 S가 새초롬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환자 많은 게 내 탓도 아니고, 기분 나쁘게 째려보는 건 아니라고 봐."


 나는 급히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 안 째려봤어요! 왜 제가 S 언니를 째려보겠어요! 저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본 예요!"


 평소에 내 눈이 힘이 없어서 졸리는 눈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째려본다는 오해는 처음이었다.

 혼나는 것 같은 지금 상황너무 어이가 없어 목소리도 떨리고, 억울함에 순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 주먹을 세게 쥐며 꾹 참았다. 하지만 내 해명에도 S랑 친한 실장은 단호히 대화를 끊어내듯 말했다.


 "알겠으니, 다음부턴 그러지 마."


 마치 너의 말은 믿지 않는다. 그냥 자신이 너그럽게 넘어가준다는 듯이 말이다.


  "아니, 정말 아닌데..."


 실장은 내 말은 더 이상 듣지 않았다. 그리고 둘은 쌩하니 나가버렸다. '오해면 미안하다.' 말 한마디 안 하고 말이다.

  이미 실장과 S는 내가 째려본 게 맞다고 확신하고 내 말도 그저 변명으로 받아들인 거다. 단순히 S의 지레짐작인 말만 듣고 38살 그녀는 나를 불러 유치하게 한소리를 하면서 내가 아니란 말은 믿지 않았다.


 퇴근시간이 되어서 실장과 S가 먼저 집으로 가고, 그동안 겨우 꾹꾹 눌러왔던 울음이 터졌다. 다른 직원들은 사정을 듣고, 나를 위로했지만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제일 중요한 S와 실장에게 사과의 말 한마디 듣지 못해서였다.


 겨우 눈물을 멈추고 치과를 나오자마자 거짓말처럼 다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면서, 버스를 기다리는데도 눈물이 수도꼭지 틀어 나오는 물처럼 계속 나왔다.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지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40분을 가야 도착하는 집이었기에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울면서도 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다.


  버스 안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의 억울함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눈물과 콧물을 질질 짜내며 친구에게 나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시원하지 않았다.


 결국 집에 도착하기 10분 전 버스에서 내려서 집까지 한 시간 동안 걸어가면서 울었다. 억울함의 눈물인가, 서러움의 눈물인지. 아니 둘다였다.

 

 이렇게 억울하고 기분 나쁜 일이 어디 있나. 쳐다봤다고 이렇게 불러서 혼낸다고? 아니 자기가 느끼기에 째려본 거 같다고, 기분이 상해서 '쟤가 나 째려봤어.'라고 말한 S나, '그래? 감히 내 동생을!'이라고 생각하며 손을 걷어붙이고 나를 혼내는 실장이나, 괜히 그들 사이에서 싸가지없는 X가 돼버린 나는? 나이에 맞지 않는 그들의 유치한 행동에 하고 우는 나약한 자신 싫었다. 고작 이런 이유로 눈물이 나는 건 그동안 일하며 쌓인 설움이 한꺼번에 터져서였다.


 나는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무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한 일도 아닌 일로 혼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다른 사람의 말이 이토록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오해로 인해 내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괜히 S 때문에 내가 이렇게 우는 상황 자체화가 났다.

 그래도 집에 도착해선 울지 않으려고 일부러 걸어가며 마지막 눈물콧물을 다 뺐다.




 그리고 그녀의 이기적인 행동들은 일하는 동안 계속 이어졌다.

 여우라는 존재에 대해 그렇게 경험하게 되었다. 가장 권력자인 실장을 자기편으로 만든 S는 치과 안에서 자기 맘대로 행동했다. 자기가 치과에서 갑이었다. 거기선 S의 신경을 거슬리면 금방 실장에게 불려 가는 상황이 만들어지곤 했다.


 그리고 여자들뿐인 작은 사회에서 막내인 나는 철저한 약자였다.

 첫 치과에서 어떻게든 2년 채우고, 결국 여우인 그녀들의 행동들을 참지 못하고 나는 퇴사했다. 끝까지 S는 나에게 사과 한 번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여우들의 말은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면 되는 건데, 첫 사회생활에 마음 약한 나는 상처받기 쉬운 아이였다. 그만두는 것 말곤 다른 해결책이 없었다. 


 른 깨달음은 있었다.


 '그런 행동은 나는 절대 하지 말아야지. 누구에게 상처 주는 말은 하지 말자. 그리고 마냥 여우에게 당하지 않겠다.'


 나의 멘탈을 조금 강하게 만든 첫 직장의 여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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