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늘어지게 하품하며 시간 낭비하는 그대에게

하늘에서 내던져진 백수가 하는 말

by 장대지

백수.

이 두 음절에는 집도 절도 일도 돈도 없이 소파에 누워 후줄근한 운동복 사이로 삐져나온 배를 긁는 모습이 보입니다.

백수 비하라고 지적한다면 저에게도 할 말이 있.


우선, 저도 청년백수랍니다. 그러니 제가 백수를 뭐라고 하든 이해해 주길 바라봅니다.

으레 내 것이라 여기는 것을 도리어 가혹하게 대하는 요상한 심리가 있지 않나요? 가령 내 동생은 나만 팰(?) 수 있다는 애증 섞인 합리화 같은 거죠.

(물론 동생 말도 들어봐야겠지만 저도 동생이니 오늘만 넘어가 주시기를)


할 말, 하나 더 있습니다.

저는 백수에게 모난 말을 할 생각이 없답니다. 오히려 반대랄까요. 아무래도 제가 백수니까요.

집도 절도 일도 돈도 없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남을 때리고 욕하고 사기 치는 것도 아니고, 소파에 누워 자기 몸이나 긁적이는 존재는 그 자체로 평화지킴이 아닌가요?


요즘 같은 세상에 일 구하기 힘들고, 일을 구해도 사람답게 일하는 건 또 다른 문제라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갈수록 팍팍한-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혼란한 건 마찬가지인- 사회 문제를 꼬집을 손으로 오늘은 다른 곳을 가리켜볼까 합니다.

조금 더 원초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집을 사고 절을 차리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지 않나요?




내던져진 존재.

인간은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다'라는 말을 아시나요?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우리 인간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시작을 떠올려 봅시다. 정말 '냅다'. 냅다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게 우리는 냅다- 세상에 투척됐습니다.

세상으로 입장하는 티켓을 끊은 적이 없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발부되더니 지금 여기 태어나버렸습니다.

티켓 발부 시스템: 환불은 없어~ 배 고파도~


요즘 들어 부쩍 드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정말 '내던져진 존재'구나.

인간은 어느 정도의 자유와 어느 정도의 한계 속에서 나름의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그 선택의 영향을 감수하는 방향으로 책임을 집니다.

선택도 내 몫, 결과도 내 몫, 그로 인한 수습이나 감내 혹은 만끽이라는 책임도 전부 내 몫입니다.

선택의 기준도 책임의 범위도 결국엔 모두 주체의 몫이라는 점이 참으로 내던져진 존재에게 할당된 권리(혹은 족쇄)답지 않은가요?

석기 왈: 자, 할 수만 있다면 맘대로 해 보시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이 개인의 선택에서 출발하는 세상입니다. 나의 선택이라는 씨줄과 세상의 흐름이라는 날줄이 직조하며 펼쳐지는 삶 속에서 나의 의지로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조타기는 나의 선택입니다.

냅다 내던져진 존재로서 어떤 선택이 옳고 그른지 확신하기란 어렵겠죠. 하지만 나름의 선택을 내려야 합니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라면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분기점을 돌고 찍으며 활강하고 추락하길 반복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선택의 갈피를 공고히 해야 한다는 재촉과 강요를 내밀고 싶은 건 아닙니다.

우리는 영화를 보는 중간에 감상평을 남기지 않습니다. 감상하는 내내 감정은 요동치기도 합니다. '이 영화 별로야, 시간 아까워' 내지 '와 정말 재밌다, 보러 오길 잘했어' 같은 판단이 들 수 있겠죠.

그러나 그런 생각이 작품을 전부 설명해주지는 못합니다.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나서 떠오르는 감상이 그 작품에 대한 진짜 나의 감상이 아니던가요?

때로는 영화가 남긴 잔상이 영혼 속에 충분히 머물다 어느 날 불쑥 '아, 그게 이런 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기도 합니다. 경험이라는 퇴적층 속에서 발효되고 숙성된 그 결론이 제게는 가장 잘 익은 열매 같습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인생에 결론을 내거나 방향을 고정해야 한다는 압박에 사로잡힌 사람이 있다면-제가 책임져 줄 수는 없고 결국 그대의 몫이긴 하지만- 조금 더 방황해도 괜찮다고 심심한 위로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인생의 8할은 내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태어난 국가와 부모의 영향이 인생의 8할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낙심하고 되는대로 살라는 건 아닙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20%의 선택권이 있니까요.

5번 중 4번은 잘 될 때도 있고 잘 안 될 때도 있겠지만, 그중 한 번은 꼭 내 멋대로 할 수 있다면 그 선택을 즐길 권리가 있지 않나요?


선택의 영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고, 그 결과 지금의 삶을 나름의 방식으로 즐길 수만 있다면 내가 태어난 이유와 목적은 오롯이 내 마음입니다.

글 초입에 말했듯, 인간이 직업을 가지거나 가정을 꾸리기 위해 태어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종종 그것이 목적이고 전부인 것처럼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들꽃이 관찰당하고 꺾이기 위해 피어나는 게 아닌 것처럼,
산속 호랑이가 가죽을 뜯기기 위해 어슬렁거리는 게 아닌 것처럼,
바람이 바람개비를 돌리기 위해 불어오는 게 아닌 것처럼,
독수리가 사냥당하기 위해 비상하는 게 아닌 것처럼,
우리도 무목적의 목적성을 띠고 태어나지 않았을까요?


자주 잊고 살지만 인간 또한 생명으로서 자연의 일부입니다.

자연스러울 때 가장 편안하고 아름다운 자연물로서, 저와 여러분이 본연의 선택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사는 동안 어느 정도는 소파에 늘어지게 누워 통통한 배를 긁으며 하품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길게 해 보았습니다.

백수로 사는 동안 방황을 하든, 시간 낭비를 하든, 취미를 즐기든 그것은 그의 자유이고 선택입니다.

그러니 책임질 수 있는 한도만큼 최대한, 마음껏 자연스러운 나태와 방황을 즐기시길!

이와 같은 선택을 긍정해 주는 환경이 만연하기를, 그 결과 그들이 자기 자신과 세상에 이로운 선택으로 나아가길 라며 오늘도 글을 써봅니다.

오늘의 선택이 들꽃 하나를 심을지, 단단한 씨앗을 바람에 흘려보낼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