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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식 벼락치기

인생을 벼락치기처럼 살아보기로 했다.

by 장대지 Mar 31. 2025

나는 벼락치기의 달인이다. 대학 시절에도 시험 일주일 전 방대한 양의 지식을 머릿속에 욱여넣고 재배치하며 '울던' 추억을 빼놓을 수 없다. 물리적인 눈물은 흘리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이마를 빡빡 치고 미리 공부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마음으로 엉엉 울었다. 하지만 그것도 효과가 있기 때문에 하는 짓이었다. 평점 4.26의 점수로 졸업한 것을 보면 벼락치기로 연명한 학생치고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건 자랑이 아니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종종 벼락치기로 성과를 내는 학생들에게 '그렇게 하는 만큼 평소에 했으면 전교 1등도 했겠어!'라고 꾸짖는 어른들이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벼락치기를 잘하는 사람들은 평소에 조금씩 공부하는 게 어렵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누전되듯 작동하는 에너지가 아니다. 에너지를 방출할라치면 대포처럼 뭉텅이로 발사된다. 그래서 폭발적인 벼락치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벼락치기로 낼 수 있는 성과와 평소에 차곡차곡 공부해서 내는 성과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다. 생각해 보라. 전체 에너지의 총량은 정해져 있는데 평소에 누전이 되면 벼락처럼 모아서 쏟아낼 건더기가 남겠는가. 벼락치기 능력의 핸디캡이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더니, 교육 기관을 졸업하고 나서도 각종 자격증이나 면접 등 시험을 앞두면 미룰 만큼 미루다가 벼락치기를 한다. 여느 문제집들이 표방하는 '일주일의 기적, 7일 완성'이 통하는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시험 운이 좋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인생은 시험이 아니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나의 고유 스킬 중 '벼락치기'는 특정 이벤트를 앞두고 발동되는 고효율 능력이지만, 인생 전체는 이벤트의 연속보다도 일상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마디로 평소에 쓸모가 없다는 뜻이다. 아니, 오히려 방해된다.


최근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면서 나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특징이 있다. 바로, 같은 일을 3일 이상 반복하면 웬만해서는 승부가 나고, 그래서 폭삭 질려버린다(작심삼일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3월 다이어리를 돌아보며 발견한 이 '3일의 법칙'을 확인하자, 그동안 내가 어째서 벼락치기를 고수했고, 한 가지 일을 일 년 넘게 하기가 어려웠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사주에 토(土)가 없고 역마살이 끼어서 그런가 했던 날 이후로 하나 더 얹어진 자기 이해였다. (좋은 점이라면 게임도 3일 연속으로 하면 할 만큼 했다고 느껴서 미련 없이 손을 떼니 중독 걱정이 없다. 브이)


하지만 인생은 흔히 장기전이라고 말하듯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노력을 쌓아 올리는 정진과 인내가 필요하다. 물론 1년 이상 꾸준히 공부하는 외국어 어플이 있고, 5년 동안 한 곳에서 아르바이트한 경험도 있지만, 내가 한 가지에 심혈을 기울이는 일은 가뭄에 콩 나듯 발현하는 기현상이었다. 또, 나이가 들수록 '정말 진심을 다해서 해내고 싶은 찰떡같은 일'을 만나야만 움직이고 싶은 이상한 고집이 생겨서 꾸준히 하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금방 노선을 틀어버리며 변덕을 부린다. 세상을 향해 지속적인 호기심을 열고 방랑하는 삶도 흥미롭지만, 이제는 한두 분야에 발을 딛고 전문성이라는 것을 키워보고 싶다.


그래서 타고난 벼락치기 특성을 새롭게 활용해 보기로 했다. 바로 프로젝트: 벼락. 작심삼일도 10번이면 한 달이 되듯, 2주에서 2달 간격으로 집중 프로젝트를 배치하는 편이 체력적, 능력적으로 수월할 것이고, 무엇이 됐든 꾸준히 에너지를 쏟을 묘책이 될 것 같았다. 다만, 벼락치기 장인들이 벼락치기만 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한정된 체력이다. 벼락을 내릴 동안 온 에너지를 끌어모아 방전되기 때문에 재충전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 정해진 기간 동안 폭발적인 집중력과 생산성을 발휘하고, 종료와 함께 성과를 내면 일한 만큼 쉬는 것까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정했다.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는 것, 벼락치기 DNA의 심금을 울린다.


늘 꾸준히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부담 때문에 어떤 일이든 정을 붙이지 못하거나 지지부진했던 걸지도 몰랐다. 프로젝트성 계획을 세운 뒤로 마음이 가볍고 설렌다. 과연 어떤 방식으로 어떤 성과를 보일지 벌써 기대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혹시 지금 일하는 방식이 어딘가 불편하다면 다양한 시도를 해보길 권한다. 늘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았다고 여기며 여러 시도를 해보고 나를 알아가며 내게 맞는 환경을 알맞게 구축해 가고 싶다. 나의 첫 프로젝트가 기대에 상응하는 결과를 뽐내거나, 그러지 못하더라도 유의미한 과정을 보여주길 기대하며. 프로젝트: 벼락, 우르릉 쾅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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