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봄이 돌아왔을 때

by 송이

어느 날 저녁을 먹다가 엄마는 옆집 아주머니가 남편과 함께 여행을 가신다고 하셨다. 유럽을 열흘 동안 간다고 좋겠다고 하시는 엄마의 눈에 부러움이 비쳤다.


“엄마 우리도 어디 여행 갈까?”

“우리도? 어디?”


우리도 여행 갈까, 하는 내 물음에 엄마의 눈빛이 반짝였다. 아빠가 암으로 돌아가신 뒤 엄마는 혼자 우리 남매를 키우셨다. 당신 혼자 우리를 잘 키워내야 한다는 생각에 엄마는 허리띠를 조여 매시고 그 흔한 여행 한 번 가지 않으셨다. 동네 아주머니들과의 당일치기 나들이 한두 번 정도가 엄마 여행의 전부였다.


어디 가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묻자, 엄마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미국.’ 미국은 나도 가본 적이 없는데 엄마가 미국에 가고 싶어 하신다니 굉장히 의외였다. 그래 까짓것 가보자! 하고 미국 여행 검색을 시작했다. 몇 시간의 검색 끝에 괜찮은 패키지 프로그램을 찾았고 예약까지 모두 마쳤다. 그때가 2월이었고 사건은 4월 말에 일어났다.


봄기운이 완연하던 4월의 어느 아침, 엄마가 내 방문을 열었다. 잠에서 깨신 엄마가 내 방에 오시더니 가슴에 뭐가 잡힌다며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하셨다. 혹시 유방암이 아닐까? 걱정되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출근해서 일하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조직검사 결과 유방암이 의심된다며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을 듣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왜냐하면 아빠가 위암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정신없이 큰 병원을 예약하고 유방암 확진을 받은 엄마의 수술이 6월로 잡혔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미국 여행 예약한 것도 잊고 있었는데 수술을 며칠 앞둔 엄마가 조심스럽게 여행 취소해야 하지 않냐며 말을 꺼내셨다. 여행은 10월 예정이었는데 수술하고 항암치료 하시는 엄마가 열 시간 넘게 비행기 타고 미국 여행을 가시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항암치료 할 때 머리도 다 빠질 수 있다고 해서 이번 여행은 보나 마나 무리였다.


“엄마 여행은 다음에 가자. 내가 더 좋은데 모셔갈게.”


그렇게 미국 여행을 취소하고 며칠 뒤 엄마의 유방암 수술이 진행됐다. 그리고 항암치료도 시작됐다. 약이 독해서 엄마의 머리가 몽땅 빠졌다. 엄마는 어색한 가발을 쓰고 다니셨는데 가끔 이 머리로 미국 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며 쓰게 웃으셨다.


그리고 2년 뒤, 엄마의 항암치료도 종결되고 엄마의 머리도 어느 정도 자랐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여행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의 체력도 어느 정도 회복되셨고 머리도 예쁘게 자랐기 때문에 여행을 모시고 가고 싶었다. 미국 여행을 앞두고 암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왠지 미국은 가기 싫어졌다. 그래서 고른 곳이 호주였다. 엄마가 미국 다음으로 가보고 싶어 하셨던 곳이었다.


드디어 호주로 떠나는 날,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으셨다. 수술을 잘 받고 항암치료도 잘 받아서 이렇게 너랑 여행 갈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하셨다. 나도 엄마랑 이렇게 여행을 갈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엄마 오래오래 건강하게 내 옆에 있어 달라고 말하는데 눈물이 나려고 해서 참느라 혼났다.


호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기내식도 먹고 영화도 보고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며 즐겁게 보냈다. 호주에 도착해서도 여러 곳을 관광하며 사진도 많이 찍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사진 속의 엄마는 짧은 커트 머리였다. 긴 머리가 예쁘던 우리 엄마가 머리카락이 몽땅 빠지셨을 때 얼마나 슬펐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여행 내내 나는 엄마를 여왕님처럼 모시고 다녔다. 수술이 잘 됐다지만 또다시 여행을 못 오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 여행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렇게 엄마와 첫 여행을 다녀온 지 7년이 지났다. 엄마는 완치 판정을 받으셨고 올해는 나와 미국 여행을 다녀오셨다. 엄마가 그렇게 가보고 싶어 하셨던 미국 땅을 드디어 올해 밟고 왔다. 나는 엄마가 건강을 되찾으셔서 나랑 함께 여행을 갈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기뻤다. 아직 젊디 젊은 예순여섯의 우리 엄마. 앞으로도 나랑 같이 오래오래 좋은 곳 많이 보러 다니면 좋겠다.


엄마와 함께한 여행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다. 앞으로도 그 선물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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