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지구 반대편에 아들이 한 명 있다.
에콰도르에 사는 알레한드로, 올해 열여덟 살이 된 나의 후원 아동이다.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건 네 살 때였다. 편지 속으로만 이어지는 인연이지만, 벌써 14년째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마음을 주고받고 있다. 매달 보내는 후원금으로 알레한드로는 학교에 다니고 학용품을 살 수 있다. 나는 아이의 생일과 크리스마스, 어린이날마다 조금씩 선물금을 보낸다. 멀리서도 그 아이의 하루에 작은 온기를 보탤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후원은 언제나 ‘내가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다. 사실 도움을 받은 쪽은 나였다는 것을.
중학생 시절, 사촌 언니가 해외아동을 후원했다. 언니의 책상 위에는 한 아이의 사진이 여러 장 놓여 있었고, 해마다 조금씩 자라나는 모습이 나의 눈에도 뚜렷이 보였다. 그 사진을 보며 ‘나도 크면 저런 일을 해야지’ 하고 다짐했다. 그 다짐은 세월이 흘러 내가 첫 월급을 받던 날 현실이 되었다. 후원 신청서를 작성하며 느꼈던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는 몰랐다. 후원이 단순히 돈을 보내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건네는 일이라는 것을.
시간이 흐르며 알레한드로와 나는 서로의 삶 속에 작은 자리를 만들었다. 편지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알리고, 사진 속 그의 미소에서 성장의 흔적을 찾았다. 한 번은 알레한드로가 축구공을 들고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선물금으로 산 첫 축구공이에요.”
그 한 장의 사진이 내 하루를 환하게 비춰 주었다.
알레한드로가 어릴 적에는 부모님이 대신 써준 편지가 오곤 했다. 그리고 다섯 해쯤 지난 어느 날, 처음으로 아이가 직접 쓴 편지를 받았다. 서툰 글씨로 눌러쓴 ‘Gracias(고마워요)’ 한마디에 내 마음은 오래도록 벅차올랐다. 그 짧은 문장이 내게 말해 주었다.
“당신의 작은 마음이 나의 하루를 바꾸었어요.”
매달 내는 후원금은 결코 가벼운 돈이 아니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누군가를 위해 꾸준히 내어놓는 일은 더 어렵다. 때로는 생활비가 빠듯해질 때도 있고,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이번 달은 다음 달로 미룰까?’ 하는 마음이 스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알레한드로의 편지를 꺼내 읽었다.
“저는 학교에 다니는 것이 행복해요.”
짧은 문장 하나가 마음의 중심을 바로 세워 주었다. 후원은 나의 사치가 아니라, 나를 지탱해 주는 작은 신념이 되었다.
나는 가끔 상상해 본다. 에콰도르의 어느 마을, 붉은 흙길 끝에 서 있는 작은 교실. 그곳에서 아이들이 공책을 펴고 연필을 쥐는 순간, 나의 손끝에서 건너간 온기가 조용히 스며드는 모습을. 그 생각만으로도 하루가 따뜻해진다.
처음 그 아이의 사연을 접했을 때는 그저 작은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매달 얼마간의 금액이 아이의 학비와 생활비에 보탬이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후원은 단순한 금전적 지원을 넘어, 서로의 삶을 이어주는 인연이 되었다.
아이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그 안에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설렘이 가득했다. ‘다음 학기에 어떤 공부를 하고 싶어요.’, ‘이번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어요.’ 같은 문장들은 나에게도 잊고 지냈던 열정을 일깨워 주었다. 나는 아이를 후원했지만, 아이는 나에게 삶의 의지를 되돌려주었다.
그 아이가 어느덧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다. 처음 편지를 주고받던 때를 떠올리면 믿기 어려울 만큼 성장한 모습이다. 2년 뒤 후원이 끝날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아이는 대학 입학 소식과 함께 ‘앞으로도 공부를 이어가며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을 전해왔다. 그 편지를 읽는 순간, 나는 알았다. 나의 후원이 끝나는 게 아니라, 함께 자라온 시간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열리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