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나의 17년

17년을 간직한 팬레터 답장

by 송이

누구나 학창 시절 가슴속에 품은 연예인 한 명쯤은 있을 것이다.

친구들이 가수나 탤런트에 열광하던 중학생 시절, 나는 개그 프로그램을 즐겨 보며 개그우먼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중에서도 나는 선희 언니가 가장 좋았다.

언니의 개그는 내 유머 감각과 딱 맞았고, 언니가 전해주는 웃음에는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시절 언니의 인기는 대단했지만, 내게는 단순한 인기 이상의 존재였다.
나는 언니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꼬박꼬박 챙겨보며, 언니의 개그를 따라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잡지에 실린 언니의 기사를 발견했다.
학교를 마치고 버스로 30분을 달려가 그 잡지를 샀다.

언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처음으로 ‘언니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 수 있어 무척 기뻤다.
1990년대 중반이던 그 시절, 잡지에는 연예인의 집 주소가 공개되곤 했다.

나는 그 주소를 보고 선희 언니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글씨가 서툴러 망설여졌지만, 내 마음을 꼭 전하고 싶었다.
방송 모니터 후기를 적고, 사소한 일상 이야기도 덧붙이며 정성껏 편지를 보냈다.



며칠 후,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이었다.
우체통에 낯선 우편물이 하나 꽂혀 있었다.

꺼내 보니, 선희 언니에게서 온 답장이었다.
싸인이 담긴 작은 사진첩과 함께 언니의 자필 편지가 들어 있었다.


시골의 한 학생이었던 내가 보낸 첫 팬레터의 답장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편지를 꺼내 보며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책상 깊숙한 서랍에 넣어 ‘보물 1호’처럼 간직했다.



그 후로도 나는 오랫동안 언니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가 이사를 간다며 새 주소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그 주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편지를 더 이상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했다.

이후 잡지에도 주소가 공개되지 않자,
나는 그저 TV와 라디오를 통해 언니를 지켜보는 팬으로 남았다.



세월이 흘러, 20대 후반이 된 나는
언니가 번역한 책의 북콘서트를 찾게 되었다.

신청을 해두고도 며칠을 설렘 속에서 보냈다.
당일, 나는 작은 꽃다발을 준비해 언니의 책 출간을 축하했다.


사인회에서 나는 1번으로 언니를 만나게 되었고,
17년 전 언니가 보내준 사진첩을 조심스레 꺼내 보여드렸다.

언니는 사진첩을 들고 눈물을 글썽이며 “이걸 아직도 가지고 있었냐”며 감격했다.
언니가 우니 나도 눈물이 나와, 우리는 한참을 함께 울었다.

“내가 아이돌도 아닌데 이렇게 오래 간직해 줘서 고맙다.”
그 말이 가슴 깊이 남았다.

그날 언니의 싸인과 포옹은 내게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되었다.



북콘서트 행사 중 아나운서가 “아까 왜 울었냐”라고 묻자,
언니는 내 사진첩을 들고 이야기했다.

봉투가 나달 나달 해진 답장을 17년 동안 간직해 준 것이 너무 고마웠다고.

나는 언니가 힘들던 시절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지만,
그날만큼은 언니가 행복해 보여 정말 다행이었다.

나에게도, 언니에게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추억이었다.



그날 북콘서트는 오랜만에 언니를 만난 기쁨으로 더욱 특별했다.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언니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오랜 팬심을 전하고 돌아온, 참으로 기분 좋은 하루였다.
언니도 내 덕에 기분 좋았다니 정말 기뻤다.

중학생 때 처음으로 받은 선희 언니의 편지는
내 유년 시절의 아주 행복했던 추억이었고,
17년 만의 언니와의 만남은
어른이 된 내게 또 하나의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그날의 기억은 마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은 듯했다.
북콘서트를 다녀온 지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그 설렘과 감동은 여전히 생생하다.

중학생 소녀였던 나는 어느덧 40대가 되었고,
여전히 언니를 멀리서 지켜보는 팬이다.

라디오에서 언니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진다.

어린 시절 내게 웃음을 선물했던 언니는
지금도 내 삶에 잔잔한 기쁨을 준다.



그런 언니에게, 나는 오늘도 변함없이 마음속으로 속삭인다.

항상 응원하고 있다는 것,
언제나 멀리 서라도 함께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늘 감사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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