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헤매도 괜찮아

by 송이



아, 또 결국 여기네.


몇 분째 같은 자리를 맴돌던 내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친구와의 약속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는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 낯선 골목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휴대전화 속 지도를 뚫어져라 바라본 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서 쭉 간 다음 다시 왼쪽으로 꺾으면…. 아 찾았다!


결국 근처에서 15분을 빙빙 돌다가 식당에 도착했다. 늦지는 않았지만, 약속 장소에 이미 도착해 있던 친구의 눈빛은 겨울바람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



“너 또 길 헤맸지?”

“아니 이번엔 제대로 왔는데…….”



내 변명이 듣기 싫다는 듯 친구는 손을 휘휘 저으며 고개를 저었다. 매번 길을 못 찾아 헤매는 나에게 제발 좀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라고 잔소리를 백번쯤은 했을 것이다. 그런 친구의 마음도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길을 못 찾아 뱅뱅 돌지언정 남에겐 묻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종종 길을 잃는다. 사람들에게 물어보지 않아서, 아니 묻지 않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그래도 결국은 도착한다. 좀 더디고, 맴돌고, 가끔은 같은 자리를 다시 밟기도 하지만 길을 잃어도 결국 스스로 찾아내고 만다.



사실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나에겐 이상한 고집이 있다. ‘내 힘으로 알아내고 싶다’는 고집. 더 오래 걸리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아마도 나는, 내가 찾아낸 길 위에서 느끼는 그 묘한 뿌듯함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길을 잃는 건 언제나 잠깐이다. 맴도는 시간도 길어야 15분 남짓.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머릿속은 어지럽게 돌아간다. ‘내가 뭘 잘못 봤지?’ ‘분명 이 골목이 맞았는데.’ ‘저기 있는 사람한테 물어볼까?’ 아니다, 그냥 다시 돌아가자. 혼자 해보자. 다시 한 바퀴.


혼자 해결하지 못하면, 내가 얼마나 초라해질까 하는 마음 한켠이 묘하게 쓸쓸하다. 누군가에게 묻는 순간, 나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것만 같고 그게 견딜 수 없이 부끄럽기도 하다. 그래서 더더욱 묻지 않고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나의 이상한 고집은 해외여행을 가서도 계속됐다. 우리나라에서도 길을 잘 못 찾는 내가 외국이라고 잘 찾을 리가 없다. 그래서 지도를 더 자세히 보고 길을 가는데도 역시나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만다.


얼마 전 일본 오사카에 갔을 때였다. 공중정원을 찾아가는 길,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야 했는데 나는 왼쪽 길로 들어섰다. 한참 걸은 뒤에야 잘못 온 걸 깨달았지만, 돌아가기엔 시간이 너무 늦었다. 어쩔 수 없이 계속 걸었고, 결국 한 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힘들었지만, 그 순간 느낀 뿌듯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런데 되돌아올 때 원래 갔어야 하는 오른쪽 길을 통해 오니 역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너무 황당했지만, 왼쪽 길로 간 걸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작고 귀여운 고양이, 길가에 핀 예쁜 꽃들.. 시간이 들고 다리는 조금 아팠지만, 결코 헛된 시간만은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인생도 그렇다. 누군가에게 길을 묻지 않아 헤매는 시간이 있었고, 누가 알려줘도 결국 내 방식대로 돌아가게 되는 순간도 있었다. 내 고집 뒤에 숨겨진 건 어쩌면 타인에게 기대는 게 두려운 마음일지도 모른다. 혼자 해내고 싶다는 마음 한켠에는 외로움도 있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견뎌내고 싶다는 작은 자존심도 있다.



앞으로도 나는 분명 길을 잃을 것이다. 그때마다 스스로 묻겠지. ‘이번에도 혼자 가볼까, 아니면 물어볼까?’ 아마도 내 대답은 변함없을 것이다.



“이번에도 혼자 가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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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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