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제15회 반기문 전국백일장 대학, 일반부 산문 부문 대상작

by 송이

그날도 자려고 침대에 누워 SNS를 하고 있었다. 친구들의 계정에 접속하자 아기가 울고 있는 사진, 아이들과 나들이 간 사진, 아이가 자고 있는 사진들이 보였다. 나는 미혼이었지만 친구들은 거의 다 결혼해 아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사진 대부분이 아이들이었다. 평소에는 별생각 없이 보던 사진들이었는데 그날은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 한쪽이 욱신거렸다. 낮에 산부인과에서 들었던 충격적인 이야기 때문이었다.




“난소 나이가 많아서 자연임신이 힘드실 것 같아요. 결혼과 임신, 출산 계획이 있으시다면 난자 냉동을 권유드립니다.”



사실 병원에서 그 이야기를 듣기 전까진 결혼도 아이도 전혀 생각이 없었다. 내 명의의 집, 정년이 보장된 직장, 외로움을 타지 않는 성격, 재미있는 취미들, 비혼의 삶이 너무 재미있었기에 내 인생엔 결혼도 없고 아이도 없다며 싱글 라이프를 즐기려고 했다.




그런데 자연임신이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자, 심장이 발등으로 떨어져 내렸다. 갑자기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내일이라도 당장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았다. 사십 대 초반이라 이미 노산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연임신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가능성이 없다니. 검사 결과지에 쓰여 있는 임신 가능성 5%의 숫자가 너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내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니 갑자기 하늘이 두 쪽으로 찢어졌다.



정말 임신 욕심이 하나도 없었는데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내 의지로 임신을 안 하는 것과 의지와 상관없이 못하는 것이 이토록 크게 다가올 줄 몰랐다. 길에서도 회사에서도 전에 보이지 않았던 임신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행복한 얼굴로 미소 짓고 있었다. 너무 부러웠다.



난자 동결을 위해 병원을 알아보다가 매일 보는 SNS계정에 들어갔다. 임신 16주가 된 친한 동생의 계정에 아주 작은 아기의 옷이 올라와 있었다.

‘우리 콩이 배냇저고리’

사진 밑에는 보건소에서 하는 출산교실에서 배냇저고리를 직접 만들었다고 쓰여 있었다. 작은 배냇저고리가 앙증맞아 보였다. 나도 내가 지은 옷을 입은 내 아이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낳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눈물이 주룩 흐르는 걸 보니 다 거짓말이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정말 아이를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갖지 못하는 동경인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있는 친구들, 난임 치료 경험이 있는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자 동결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알기에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나는 내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잠든 아이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또 그 체온을 느끼고 싶었다.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련도 아쉬움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나를 닮은 아이를 원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싶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을 뿐이었다.



난자 동결을 하기로 한 이상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이 쉽지 않다는 걸 안다. 스스로 배에 주사를 놓고 난자 채취를 하는 일이 얼마나 자괴감이 들고 아프고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다. 생명은 고귀한 것이기에 그 소중한 생명 탄생을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나를 닮은 아이의 얼굴을 보며 미소 짓는 날이 언젠가 오겠지. 나와 만날 아이의 얼굴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얼굴인 아가야 엄마가 미래에서 기다릴게. 우리 웃는 얼굴로 만나자.



아기 천사가 내게 찾아오는 길이 멀고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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