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가 되어버린 나의 엄마

by 송이

“엄마! 이거 어떻게 해야 해?”


내가 아주 어린 애기였을 때부터, 나에게 엄마는 모르는 게 하나도 없는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이었다. 무엇을 물어봐도 엄마는 다 대답을 해주었고 나에게 어떠한 문제가 생겨도 엄마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자주 찾았다. 숙제를 할 때, 티비가 안 나올 때, 입고 싶은 옷을 못 찾을 때……. 언제나 엄마는 모든 일을 해결해 주었고 그런 엄마가 있어 마음 한편이 늘 든든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엄마가 변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니?”

60대 중반이 된 엄마는 요즘 이 말을 달고 사신다. 핸드폰 배경 화면은 어떻게 바꾸는지, 임영웅의 노래는 어떻게 다운 받는 것인지, 키오스크로 햄버거는 어떻게 주문해야 하는지. 어린 애기처럼 엄마는 자꾸만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어릴 적, TV 채널이 안 나오던 날에는, 리모컨을 이리저리 눌러보다 결국 코드까지 뺐다 꽂으며 “이제 되네!” 하고 웃으셨던 엄마. 그런 기억들이 지금도 선명한데, 그 똑똑하던 엄마가 요즘엔 핸드폰 카메라 전환도 어려워하신다.


며칠 전에도 핸드폰 배경 사진 바꾸는 법을 알려 드렸는데 몇 번이나 계속 알려달라고 해서 조금 짜증을 냈더니 엄마가 삐졌는지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셨다. 아니 이 간단한 걸 몇 번을 설명해 줘도 왜 잊어버리는 거지. 똑똑한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얼마 전 주말, 엄마랑 햄버거 가게에 갔을 때였다. 점심으로 햄버거가 먹고 싶다던 엄마와 함께 키오스크에서 햄버거를 고르고 있었다. 엄마는 내 옆에서 내가 주문하는 걸 유심히 쳐다보고 계셨다.

”엄마가 한번 주문해 볼래? 별로 안 어려워.“
”그럼 한번 해볼까?“

엄마는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레 키오스크 앞에 섰다. 한참을 기계만 바라보고 있던 엄마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엄마의 목소리는 작은 아이처럼 떨리고 있었다. 항상 자신감 있던 엄마가 개미소리보다 작은 목소리로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그림만 보고 누르면 되는데. 그렇게 어려운 걸까.

“엄마, 내가 도와줄게.”

하지만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혼자 해보고 싶어.”

그 말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가슴 한켠이 저려왔다. 엄마가 아무것도 모르는 애기처럼 두려움에 부딪히는 모습을 처음 보는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동안은 늘 내가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했기에 엄마가 주문할 기회가 없었다. 나는 엄마가 키오스크 사용을 못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나이가 들긴 했어도 엄마는 똑똑하니까 잘할 거라고 믿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엄마는 조용히 손을 내리셨다. 내가 주문하겠다고 하자 엄마는 먹기 싫어졌다며 그냥 집에 가자고 하셨다. 결국, 우리는 햄버거 하나 사지 못한 채 가게를 나왔다.


차 안에서 엄마는 조용히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말했다.

“내가 못하는 게 많아지고, 자꾸 어려워져서... 속상해.”

그 말에 나는 말없이 엄마 손을 꼭 잡아주었다. 엄마는 나이가 들면서 자꾸만 어린아이가 되어간다. 익숙하던 것들이 낯설어지고, 두려움이 커져가는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키오스크 앞에서 애기가 된 엄마의 모습은, 곧 내 마음 깊은 곳을 뒤흔들어 놓았다. 엄마가 나를 키웠던 그 시간처럼, 이제 내가 엄마를 품어야 할 시간임을 조용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키오스크 앞에서 주저하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예전에 시장에서 우산 두 개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내 손을 꼭 잡고 걷던 엄마가 떠올랐다. 계산대에서도 누구보다 빠르게 물건 값을 계산하고,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척척 알고 있던 사람.

그런 엄마가 지금은 햄버거 하나를 고르지 못해 속상해하고 있다. 세상은 변했지만, 엄마는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아니, 따라잡으려 애쓰다 어느새 지쳐버린 것 같다. 돌아보면, 나는 엄마에게 너무 쉽게 짜증을 냈다. 몇 번을 물어보는 게 답답하다고, 왜 이것도 모르냐고. 그런데 정작 엄마는 나에게 같은 질문을 수백 번 받아도 한 번도 짜증 낸 적 없었는데.

그날 밤, 나는 핸드폰에 ‘키오스크 사용법’ 영상을 검색해 보았다. 복잡한 메뉴와 낯선 버튼들이 화면 가득 어지럽게 나열되어 있었다. 늘 쓰던 나에게도 복잡한 이 기계가, 처음 접하는 엄마에게는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이건 그냥 버튼을 누르는 게 아니라, 낯선 세계에 발을 들이는 일이었겠구나.’

며칠 뒤, 엄마는 다시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했다. 이번엔 내가 일부러 키오스크 앞에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이거 어떻게 해야 해?”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모르지. 니가 다시 알려줘야지.”

나는 화면을 천천히 넘기며 하나하나 설명해 드렸다. 이번엔 짜증도 없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엄마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속도로. 설명하며 나는 내 햄버거를 주문하고, 엄마의 몫은 엄마에게 맡겨 보았다. 엄마는 서툴지만 천천히 주문을 시작했고 결국 엄마의 햄버거를 주문하는데 성공했다. 주문이 성공한 순간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몇 번 더 연습하면 잘할 거라는 나의 응원에 엄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엄마는 며칠 동안 키오스크 사용법을 검색해 보고 공부를 했다고 했다. 그래도 어렵다는 엄마를 위해 중장년을 위한 스마트폰과 키오스크 사용법 등을 가르쳐주는 강의를 찾아 등록을 해드렸다. 엄마는 처음에 그런데 가는 게 창피하다고 하셨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수업에 열정적으로 참여하신다. 엄마 친구분들과 카페에 가면 키오스크로 자신 있게 주문할 수 있다며 정말 좋아하셨다.

키오스크 앞에서 애기가 된 엄마를 보며 놀랐던 그날, 나는 이제야 정말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앞으로도 엄마가 나에게 “이거 어떻게 해야 해?”라고 묻는 순간들이 더 많아지겠지. 나는 그때마다 천천히, 다정하게, 설명해 줄 것이다.


이제는 엄마가 “이거 어떻게 해야 해?”하고 물으면, 나는 웃으며 말해줄 수 있다.



“엄마, 우리 천천히 같이 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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