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엄마의 만두
접시 위의 만두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통통한 김치만두 다섯 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젓가락으로 만두 하나를 집어 입안에 넣었다. 육즙이 입안에 폭 터졌다. 뜨거움을 느낄 새도 없이 나는 순식간에 만두를 먹어 치웠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우리 엄마표 김치만두.
나는 “만두 귀신”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만두를 좋아한다. 그래서 엄마는 늘 다양한 만두를 빚어 주셨다. 찐만두, 만둣국, 군만두 하루 종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먹을 때마다 만두의 찜솥만큼이나 따뜻한 엄마의 사랑이 느껴졌다.
“엄마, 김치만두 해 주면 안 돼?”
얼마 전, 김치만두가 먹고 싶어서 엄마에게 묻자, 엄마가 예전과 다르게 바로 대답하지 않으셨다.
“… 그래. 해 줄게.”
“귀찮으면 말고.”
“아니야 해 줄게.”
썩 내키지 않아 하는 엄마의 대답에 나는 빈정이 상했다. 귀찮아서 그런가.
속상한 마음을 회사 언니에게 이야기했더니 언니가 “으이구 이 철딱서니야” 하며 내 등을 찰싹 때렸다.
“ 너 저번 달에도 만두 해달랬다며. 그런데 한 달도 안 돼서 또?”
“그게 왜?”
“야 만두 만드는 게 얼마나 귀찮고 성가신데 그걸 그렇게 자주 해달라고 해.”
언니의 말에 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만두 만드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지. 김치를 썰어 다지고, 국물을 짜고, 두부를 으깨고, 돼지고기 갈아 넣고……. 엄마는 만두피도 밀가루 반죽을 직접 해서 만드신다. 만두소부터 만두피까지 혼자 다 준비해서 만두를 빚고, 찌고, 굽고, 끓이고. 나를 위해 그 힘들고 귀찮은 과정을 30년이 넘게 혼자 반복해 오셨다.
초등학교 때, 나는 엄마 옆에서 만두를 빚던 기억이 난다.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밀며, “손힘이 부족하면 이렇게 해야 해”라고 말씀하시던 엄마. 그때는 모든 과정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만두를 만드셨는지 내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너무 어리고 무심했기에, 그 사랑을 당연하게만 여겼다. 엄마는 하루 종일 서서 만두를 만들며 나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셨다. 나는 곧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만두 진짜 안 먹어도 되니까 하지 마.”
“벌써 속 준비 다 해놨어. 퇴근하고 오면 쪄줄게.”
지쳐 보이는 엄마의 목소리에 가슴이 아려 왔다. 엄마의 말에 빈정상했던 내가 부끄럽고 후회스러웠다.
그날 저녁 엄마는 내 퇴근 시간에 맞춰 만두를 쪄주셨다. 식탁에 앉아 김이 나는 만두를 보고 있는데도 차마 손이 가지 않았다.
“왜 안 먹어? 만둣국 끓여줄까?”
“아니, 먹을게.”
따뜻한 만두를 한입 베어 물었다. 만두 속에 담겨 있는 엄마의 사랑이 온몸으로 퍼졌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엄마를 보자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주먹을 꽉 쥐고 손바닥을 꾹 눌렀다.
“엄마, 나 만두 하는 것 좀 알려줘.”
“왜? 엄마가 해 주면 되잖아.”
”이제 엄마도 힘들잖아. 앞으로는 내가 해줄게.”
엄마는 만두 한알을 내게 집어 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더 나이 들면 해 주고 싶어도 못 해.”
예상치 못한 엄마의 말에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언젠가 내 곁을 떠날 엄마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의 만두가, 엄마의 사랑이 그리우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의 나이 이제 예순여섯.
칠십이 가까워지는 나이에도 딸을 위해 만두를 아직은 더 만들고 싶으신가 보다. 나를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나도 엄마의 만두를 조금 더 욕심 내보고 싶다.
“알았어. 엄마 하고 싶을 때까지 만두랑 맛있는 요리 많이 해줘.”
“그래, 엄마가 칠십, 팔십이 넘어서도 할 수 있으면 해 줄게.”
이제 나는 안다. 통통한 만두 속에 들어간 건 고기나 김치가 아니라, 엄마의 끝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갓쪄낸 만두처럼 식지 않는 뜨거운 사랑을 나도 엄마에게 끊임없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