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아빠에게 끓여드린 마지막 김치찌개

보고 싶은 아빠에게

by 송이

아빠 잘 지내고 있어? 나는 잘 지내. 요즘 부쩍 날씨가 많이 추워졌어.



어제는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돼지고기 한 근을 샀어. 고기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끓인 매콤한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거든. 작년 김장 김치가 맛있게 쉬었어. 그래서 하얀 쌀밥에 김치찌개를 끓여서 먹고 싶더라.


보글보글 찌개가 끓고 있는 사이 외출했던 엄마가 집에 오셨어. 너 저녁은 뭘 먹냐는 물음에 돼지고기 김치찌개라고 대답했더니 엄마가 그러더라. 네가 끓인 김치찌개 아빠가 참 좋아했는데.



엄마가 갑자기 꺼낸 아빠 얘기에 가슴속 깊은 곳에서 왈칵, 뜨거운 울음이 올라왔어. 아빠가 내 곁을 떠난 지 십수 년이 지났지만 난 아직도 아빠가 너무 그립고, 아빠 얘기를 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아.


아빤 내가 끓인 게 엄마가 끓인 것보다 맛있다고 했었는데.



음식솜씨가 별로 없던 내가 유일하게 맛있게 할 수 있는 음식이 바로 김치찌개였어. 내 찌개는 달고 짜고 매콤했지. 사실 온갖 자극적인 양념이 다 들어가서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아빠랑 나는 식성이 같아서 엄마의 심심한 김치찌개보다 내가 끓인 양념 폭탄 김치찌개를 좋아했잖아. 엄마가 외출할 때면 아빠는 내가 끓인 김치찌개에 소주 한잔 하며 밥 드시는 걸 좋아했는데. 기억나? 아빠가 뜨끈한 국물과 돼지고기를 안주 삼아 드시며 “야 진짜 최고다 최고”라고 하면서 술잔을 계속 비웠어.



그랬던 아빠가 위암에 걸렸지.



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 아빠가 건강검진에서 위암을 발견했어. 위 절제 수술을 받고 철저히 제한된 식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 아빠는 몰랐겠지만 난 위암 환자가 피해야 할 식단을 공부하기 시작했어. 세심하게 장을 봐서 밥상을 차렸지. 그렇게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했던 아빠가 싱거운 음식만 먹게 됐을 때, 김치찌개에 반주도 한 잔 못 하는 아빠를 보는 게 정말 속상했어.



내가 정성을 다해 아빠 밥상을 차려드리고 보살폈지만, 암은 지독하게 아빠를 괴롭히고 있었어. 아직도 기억나. 아빠 배에 복수가 차서 병원에 가서 복수 뺐던 때를. 아빠의 암은 위에서 간으로, 간에서 림프샘으로 전이되며 아빠를 너무 힘들게 했었지. 아빠는 점점 더 음식을 드시지 못했고 살은 계속 빠져갔지. 아빠의 밥상을 책임지던 나는 속상한 마음에 아빠 몰래 한참 동안 울기도 했다? 아빠 배에서 두 번째 복수를 빼고 나서 이제 아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어.



병원에서 아빠에게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아빠의 밥상을 차려드리고 싶었어. 아빠랑 함께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돼지고기를 잔뜩 넣고 온갖 양념을 넣어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였어. 아빠는 김치찌개가 맛있다며 소주가 한잔하고 싶다고 했었어. 나는 잔에 소주를 가득 따라드렸고 아빠는 소주 한잔을 아주 맛있게 드셨지. “정말 최고다 최고” 라며 술잔을 비우신신 아빠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했어. 나는 그날 아빠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어.



그리고 며칠 뒤 나는 더 이상 아빠의 밥상을 차리지 않아도 되었어. 아니 차리고 싶어도 차릴 수가 없게 되었지. 50대 초반이라는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빠를 생각하면 더 이상 흘릴 눈물도 남아있지 않았어. 아빠가 암과 싸우던 3년 동안 아빠의 밥상을 차리면서 쉴 틈 없이 울었거든.



아빠. 40대가 된 지금 나는 예전보다 할 줄 아는 음식도 많고 또 잘하는 음식도 많아. 이제는 김치찌개 말고도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밥상을 차려 드릴 수 있는데 내 음식을 드셔 줄 아빠는 어디에도 없네. 아빠와 더 이상 같이 밥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면, 가끔 김치찌개가 미워지기도 해. 아빠가 생전에 좋아하셨던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끓일 때마다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오늘은 유난히도 아빠가 생각난다. 김치찌개가 맛있게 끓여져서 그런가 봐. 아빠 빨리 와. 밥상 차려놓고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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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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