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모르겠지만, 웨딩드레스는 입고 싶어

by 송이

내 핸드폰 속 여러 개의 단톡방 중 가장 활발한 방은 대학 친구들이 모여있는 방이다. 40대 중반을 향해가는 우리 다섯 명의 멤버가 들어가 있는 그 방에서 나만 유일한 미혼이다. 나를 제외한 4명은 이미 20대 중후반에 모두 결혼을 해서 가장 큰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이다. 가장 막내는 유진이의 아들로 이제 두 돌이 됐다. 그 방은 늘 육아와 시댁, 남편 이야기로 가득하다. 요즘은 아이들 교육 정보 교환이 활발한데 나는 알림이 100개를 넘어가면 쓱 한번 훑어보고 창을 닫는다.

얼마 전 그 친구들과 우리 집에서 1박을 했다. 친구들은 오랜만에 자유부인이 됐다며 기뻐했다. “나는 늘 자유부인이지롱~” 친구들에게 말하니 모두들 부러운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랬다. 나는 1년 365일 내내 자유부인이었다. 비록 엄마와 함께 살고 있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신경 쓸 남편도 아이도 없다. 내 한 몸만 건사하면 되는 자유인. 나는 지금의 내가 너무 행복하고 좋다.

사실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는 그래도 결혼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때는 뭔가 결혼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되는 것 같았다. 남들 다 하는 결혼 너는 뭐가 모자라서 못하냐며 잔소리하는 엄마의 목소리도 듣기 싫었다. 하지만 연애를 해도 즐겁지 않고 집에서 혼자 있는 게 더 좋았다. 만남이 숙제 같고 귀찮았다.

물론 20대 초반에는 결혼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캐나다 어학연수에서 만났던 그 오빠는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사람이었다. 자상하고 다정한 그는 내가 바라던 남편상이었다. 그때는 그냥 잘생긴 얼굴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언젠가는 그와 부부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마냥 핑크빛일 것 같던 그와의 연애도 곧 지루하고 재미 없어졌다. 롱디여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그 없이도 하고 싶은 일들이 정말 많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만났던 사람들과의 연애는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는데 그걸 다 하지 못하니 병이 날 지경이었다. 주말에 이것도 배우고 싶고 저것도 배우고 싶은데 데이트를 하느라 시간을 다 써버리면 짜증이 났다. 그래서 연애를 끝내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게 되면 너무 재미있고 신났다. 게다가 나는 덕질이라는 강력한 취미가 있었다. 덕질 앞에 연애는 사치나 다름없었다. 덕질도 연애와 마찬가지로 감정 소모가 큰일이라 더 그랬다.

수많은 취미가 있고 배우고 싶은 것들이 잔뜩인 나는 외로움도 타지 않는 성격이었다. 며칠을 혼자 있어도 지루하지 않고 혼자 노는 게 재미있었다. 책도 보고 글도 쓰고 영화도 보고, 게다가 나는 혼밥도 잘했다. 연인이 없어도 재미있게 사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결혼 생각이 없어졌는데 결정적으로 서른아홉 살에 집을 사면서 결혼은 내 머릿속에서 까맣게 사라지고 말았다.

정년이 보장된 안정된 직장, 내 명의로 된 30평의 신축 아파트, 외로움 타지 않는 성격, 지루할 틈이 없이 즐길 수많은 취미들, 평생 할 수 있는 덕질, 비혼을 다짐한 친구들. 결혼하지 않을 이유가 너무나 많았다. 내가 결혼을 해보지 않아서 모르는 결혼의 장점도 많이 있겠지만 일단 그 장점들이 별로 궁금하지 않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결혼할 거라고 굳게 믿고 계신다. 나도 마음속 한켠에는 좋은 사람을 만나면 언젠가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아주 작게 남아 있다. 나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결혼은 안 한다!라는 강성 비혼주의자는 아니다. 결혼의 필요성을 별로 못 느껴서 안 할 뿐이다. 막상 결혼을 안 하려니 조금 아쉬운 건 있다. 바로 나를 닮은 아이를 안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랑으로 낳은 아이를 품에 안고 남편과 함께 외출하는 그림을 그려볼 때가 있었는데….

하지만 다 꿈같은 이야기다. 작년에 병원에서 임신 가능성이 낮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아이를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슬프다기보다는, ‘아 이제 정말 다른 길로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아이 없이 둘이 살아갈 자신도 없고, 그렇다고 아이를 위해 결혼하고 싶지도 않았다. 혼자 살면서 조카들 예뻐하고 사는 게 스트레스도 없고 더 좋을 것 같다.

아, 결혼을 하지 않아서 아쉬운 게 하나 더 있는데 웨딩드레스를 입지 못 한다는 거. 결혼식을 하면 내가 덕질하는 샤이니 태민이가 축가를 불러준다고 팬 사인회에서 약속했는데, 그 축가를 받지 못하는 것도 아쉽다. 예쁜 드레스 입고 태민이의 잘생긴 얼굴로 불러주는 감미로운 축가를 받고 싶은데.. 나랑 결혼식만 올릴 사람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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