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무언가가 오늘도 나를 아프게 한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오랜 시간 나를 아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처럼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내 마음 청소를 게을리 한 사이, 그 작은 존재들은 거대한 칼처럼 변해 나를 찌르기 시작했다.
내가 여섯 살 때, 한 살 어린 동생과 동네에서 놀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엄마가 찻길에 가지 말고 마당에서만 놀라고 했는데, 내가 그 말을 어기고 밖에 동생을 데리고 나갔다가 동생이 차에 부딪혀 머리를 크게 다쳤다. 나는 재빨리 차를 피했지만 걸음이 느렸던 동생은 사고를 피할 수 없었고, 3개월이 넘게 중환자실에 있어야 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동생이 다친 이유는 내가 엄마 말을 어겼기 때문이라는 걸. 부모님은 나를 혼내거나 원망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사고의 원인은 바로 나였다. 나는 동생에게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저질렀다. 동생이 중환자실에서 몇 번의 고비를 넘기는 동안, 나는 동생이 죽을까 봐 매일 걱정했다.
그 불안과 공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처럼 내 마음속에 하나둘씩 쌓여 갔다. 처음엔 아주 작았던 조각들이 시간이 흐르며 점점 커졌고, 마음을 갉아먹더니 결국 내 전부를 삼켜버렸다. 그 결과, 나는 눈을 자주 깜빡이는 틱장애를 겪게 되었다.
몇 달 뒤 다행히 동생은 퇴원했지만, 의사 선생님은 동생이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쳐 두통이 잦아졌고, 시신경 손상으로 시력도 나빠졌다고 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의사 선생님의 그 말은 어린 내 마음에 깊이 박혀,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는다.
동생이 살아 있다는 안도감도 잠시, 그 말과 함께 마음속 조각들은 더 날카로워졌다. 그렇게 죄책감이라는 이름의 미세 플라스틱이 가슴속을 가득 채웠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겪는 눈 깜빡임 틱장애를, 나 스스로에게 내리는 벌이라고 생각했다. 동생을 그렇게 만든 내가 벌을 받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고 여겼다. 어릴 적 친구들은 나를 ‘깜빡이’, ‘신호등’이라 부르며 놀렸고, 취업 준비를 하던 시절에는 틱장애 때문에 승무원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너무 괴롭고 힘들었지만, 그것 또한 내가 감내해야 할 몫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눈은 여전히 남들보다 자주 깜빡였고, 죄책감은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 깊게 박혀 있었다. 동생은 나의 미안한 마음을 알아주며 괜찮다고 말해주지만, 정작 내가 괜찮지 않았다. 나는 힘겹게 살아가는 동생에게 평생 속죄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착한 동생은 내 마음속에 자리한 그 미세 플라스틱 조각들을 치워주려 애쓴다. 아프고 따가운 내 속을 부드럽게 쓸고 닦으며, 점점 커진 덩어리를 조금씩 없애려 노력해 준다. 그런 동생이 고맙다. 나도 이제는 죄책감을 내려놓고, 동생을 더 사랑하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마음속에 쌓인 그 조각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티끌 같던 플라스틱 조각들이 40년 가까이 쌓여 이제는 마음 한가득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목구멍이 콱 막힌 듯,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다.
그럼에도 이제는 더 이상 마음속 짐을 쌓아둘 수 없다는 걸 안다. 동생은 여전히 말해준다. 이건 누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 말에 기대어, 나도 조금씩 죄책감을 내려놓고 더 좋은 누나가 되려 한다. 가슴속을 떠다니며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죄책감과, 깊숙이 박힌 작은 플라스틱 덩이들을 천천히 치워내고, 동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채우고 싶다.
오늘 동생과 함께 카페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동생은 나를 보며 웃었고, 그 순간 내 마음 한편이 조금 편안해졌다. 창밖 햇살에 반짝이는 미세 플라스틱이 바람에 흩날리듯, 내 마음속 깊은 상처도 언젠가는 가벼워지면 좋겠다. 더는 나를 아프게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