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봄은 배가 고프다

by 글똥

낙엽을 밟으며 산길을 걷는다. 얼마나 많은 발길에 차였을까. 바스락바스락거리다가 폭폭거리다가 존재의 소리조차 사라진 겨울의 낙엽은 갈가리 찢겨 제모습을 모두 잃었다. 가슴 한편에서 쿵! 하고 떨어지는 과거의 시간들.


여름과 가을의 숲이 좋았기에 지금 만난 겨울 숲은 슬플 수밖에. 어제보다 오늘, 어쩌면 내일은 더 깊은 슬픔이 나를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없는 숲, 메말라버린 낙엽들, 빈곤한 풍경. 아직까지 나는 숲의 겨울을 온전히 품을 수 없다. 시커먼 가지 사이로 푸른 하늘이 저렇게 많이 보이는데도, 눈부신 하늘보다 앙상한 가지가 먼저 내 심장을 공격하고 찌른다.


잎들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만 해도 바람이 불 때마다 후드득 떨어져 바람 따라 뒹굴며 가을을 노래하지 않았던가. 그것이 마지막이라 여겼는데. 그들의 끝은 죽어서도 아름답구나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찾은 숲길에서 나는 낙엽의 완전한 죽음을 목도하였다. 햇볕의 어마어마한 시간과 공간에도 꿈쩍도 않는 낙엽들, 조금도 반짝이지 않는 갈색들의 주검. 점점 쪼그라들어 밟힐 때마다 산산이 부서지는 잔해들. 끝내 숲의 유골처럼 흩어진 조각들을 밟으면 걸을 때마다 전달되는 숲의 흐느낌.


저렇게 형체도 없이 끝내 사라져 無가 되어 버릴. 봄, 여름, 가을을 지샌 겨울의 잎들. 죽음의 끝에 잇닿은 것이 생명이라면 결국 의 세계까지 닿아야 한다는 것인가. 겨울은 이제 시작되었는데, 아직도 더 부서지고 잘게 쪼개져 형체도 없이 사라져야 끝날 겨울의 시간을 어찌 견딜 것인가. 더 뭉개지고 짓이겨져서야 숲에서 사라질 낙엽들, 오늘도 소리 없이 내 발 밑에서 부서져가며 기꺼이 겨울을 견디건만.


봄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 날마다 낙엽의 주검들이 봄의 제물로 바쳐지는 중이다. 어제보다 오늘, 내일 그리고 마지막 한 조각까지 기꺼이 먹고 말 잔인한 봄일진대, 겨울은 또 아무 말없이 모든 것을 내어준다.


누군가에게 나는 겨울의 낙엽이 된 적이 있었던가. 겨울을 먹고 태어난 봄과 같은 날들이 너무 오래였던 것은 아닐까. 아프고 나서야 보이는 겨울의 일들, 그리고 봄의 일들.


어쨌든 순리를 거슬렀기에 내 몸에 불쑥 방망이를 휘두른 세월의 재판을 이제 받아들인다. 하나를 잃고 겨울과 봄의 공생을 이해한다. 누군가에게 나는 겨울, 또 어딘가에선 봄이 되었을 삶의 법칙.


그럼에도 삭막한 계절의 한 복판에 서서 부탁하노니 나의 봄아, 작게라도 속삭여다오. 한 번만 헛기침이라도 해다오. 슬쩍 나의 옆구리라도 스쳐가다오. 조심조심 오늘도 너를 향해 걷는 한 영혼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