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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똥 Feb 12. 2022

식물들의 봄

숲으로 간다. 주중엔 한 번도 가지 못한 숲, 들어서자마자 확 풍겨오는 봄내음. 볕 좋은 곳엔 벌써  철 모르고 핀 찔레순이 붉다. 봄비가 내리면 곧 썩어 없어질 갈잎들이 수북수북 밟히는 길도 반갑다. 아픈 어깻죽지를 철봉에 걸쳤다가, 기다란 막대기를 들어 어깨에 걸치고 소림사 무림 흉내도 낸다. 굳은 근육의 뼈들이 삐그덕 대며 틈을 만든다. 풀린 날만큼 몸도 서로의 간격이 느슨해지고 있다. 창을 열고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던 봄이, 일주일 만에 찾은 숲에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망울망울 기웃대던 것들이 여기저기서 나를 부른다. 눈과 귀와 피부로 느끼는 계절은 긴 겨울, 상상 속의 희망보다 선명하고 확실해서 좋다.


그중에 제일은 매화, 지금은 그들이 움트는 시절이다. 가지 끝에 조롱조롱 매달려 향기로 진격하는 그들은 마치 봄의 선봉대장 같다. 붉은 망울은 곧 터질 것처럼 탱글탱글 윤이 난다. 가만히 있어도 공기를 뚫고 너와 내게로 닿는다. 목을 쭈욱 빼고 킁킁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모처럼 범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느라 용을 썼다. 내가 유할 방 한 칸에 무심한 척 가지 하나 꺾어 두고 싶은 걸 용케 참았다. 아직은 나의 봄이 아니라 우리들의 봄이어야 하므로.


어떤 나무의 봄맞이는 비늘 같은 흰 껍질을 온몸에 휘감고 가끔씩 바람 앞에 가볍다. 이미 벗어던진 바닥의 허물들처럼 저들 봄이 오기 전에 말끔히 욕을 끝낼 것이다. 아침마다 내리쬐는 햇빛에게 물어 새 가지와 새 순이 뻗어나갈 방향까지 정했다. 다만 봄비는 어디쯤 오시는지 숨죽여 기다리고 있을 뿐.


행여나 어린 봄이 그냥 지나칠까, 봄까치꽃도 록의 나지막한 방에 자줏빛 꽃들피우며 제 할 일을 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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