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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인생

by 글똥


요즘 허리 통증이 잦다. 중산지 산책 후 집으로 오는 길, 분리 수거장 앞을 지나는데 원목 거실 탁자가 버려져 있었다. 통원목이 탐스러웠다. 은은한 달빛과 가로수 불빛에 적당한 음영으로 나를 유혹하는 원목 탁자 앞에 선 나는 단번에 대물임을 직감했다. 아니, 도대체 누가, 저 비싸고 귀한 것을 버렸단 말인가? 서각을 하는 자인 선배에게 사진을 보내고 전화를 했다.


나무라면 일가견이 있는 선배였다. 사진으로도 좋은 물건이라고 단박에 결정짓는 선배의 말에 내 마음은 더욱 굳어졌다. 그러나 지나치게 큰 나무의 크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선배 차에는 들어갈 것 같다며 바로 온다고 하였다. 11시를 훨씬 넘은 시각, 자인에서 오려면 족히 20분은 걸린다. 게다가 내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 선뜻 와 주겠다는 선배가 고마웠다.


내 차에는 될 턱도 없고, 남편 차엔 들어갈 듯싶었지만, 여러 번 나의 거짓말에 속아 고충을 겪은 남편은 “한 번만 더 이런 쓰레기를 가지러 오라고 부르면 가만 안 둔다”라고 이미 엄포를 놓은 터였다.


결혼하고 하양에서 살 때였다. 반달 모양으로 둥글게 생긴 거실장을 직사각형으로 만들어 시트지를 붙여 보겠다며 작은 톱을 사서 자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나무는 단단했다. 몇 센티미터를 겨우 자르고 기운이 빠져 거실에 널브러져 있었다. 나머지를 퇴근한 남편이 다 잘랐다. 그때만 해도 군말 없이 잘해 주던 신혼이 아니었던가. 시트지를 사서 붙였는데 삐뚤빼뚤하게 잘린 표면이 생각보다 예쁘지 않아 결국 거실장은 버리고 말았다.


이후 경산으로 이사를 왔다. 17층에서 맞는 매일의 해맞이는 장관이었다. 게다가 베란다에 나가 자연이 수놓은 풍광에 젖어 있노라면 밥벌이의 근심이 쉬이 사라지고 이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그 자리에 기다란 탁자를 두고 카페처럼 꾸미면 더욱 멋질 것 같았다. 남편에게 지인이 버린다는 긴 탁자를 가지러 오라 했더니 “또 쓸데없는 짓 한다”라고 하면서도 낑낑거리며 집까지 들어주었다. 막상 들여놓고 보니 생각보다 쓸모없어 방치하다 이도 결국 버리고 말았다.


세 번째 이사한 집, 비움의 미학으로 더 이상 집을 채우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오늘 밤, 달빛의 유혹이 없었다면 나는 집으로 직진하였을 터. 그놈의 달은 어찌 그리 교교히 흘렀던지, 적당한 그림자의 실루엣으로 나의 마음을 날름 집어삼키고는 폐기물로 버려진 탁자 하나를 내게 덥석 안겨 준다.


이리 굴리고 저리 재 봐도 들어가지 않는다. 차가 작은 건지 물건이 큰 건지 알 수 없다. 실물을 본 선배는 “생각보다 험하군!”이라며 니스칠이 범벅이니 사포질을 한참 해야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거기에 대고 나는 “그래도 옹이가 멋지잖아. 사려면 엄청 비쌀 걸?”이라며 내가 이 물건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자꾸 들이댔다.


저토록 많은 상처를 품고 탁자는 내버려졌다. 어느 집 거실 중앙에 고가의 물건으로 실려 와 떡하니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을 화려한 과거. 수도 없이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오랜 기간, 가족들을 헤쳐 모이게 했을 추억의 흔적. 자세히 보니 덕지덕지 바른 니스칠 아래 몇 겹의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유치원 아이가 쓴 서투른 글씨도 숨어 있고, 초등학생의 연필에 움푹 파인 자국도 있다. 사춘기 소년의 날카로운 칼질에 제법 깊은 상처도 보인다. 뜨거운 냄비를 놓았는지 칠이 유독 많이 벗겨진 자리에 동그란 자국도 있다.


한 집안의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탁자의 표면을 보고 있자니 한 평생 제 몸을 바쳐 떠받들었던 세월이 지난했겠구나 싶다. 제 할 일을 다 하고 버려진 탁자를 지금 나는 엄청난 보물을 만난 양, 시끌벅적 이러고 있으니 나무 딴에는 뭔 일인가 싶어 새 주인이 될지도 모를 나를 얼마나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을까. 쓸 만했던 옹이와 그 위에 남겨진 역사를 펼쳐 보이며 당신에게도 나는 분명 쓸모가 있을 거라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진 않았을까.


몇 번 쓰다듬고 들여다본 것이 다인데 나는 이제 저 탁자를 두고 갈 수가 없다. ‘내 반드시 너를 귀한 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리라’ 다짐한다. 어쩌면, 나이 오십에 찾아온 허리의 통증으로 절반은 사라져 버린 나의 열정과 희망과 꿈이 저 탁자에게 오버랩되지 않았을까. 멀쩡한 새 것도 좋지만, 고장 나고 묵은 것을 다시 손질해서 유용하게 쓰고 싶은 마음이나 열심히 운동해서 다시 하고 싶은 것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나 다를 바 없지 싶다.


결국 남편 몰래, 자고 있는 아들을 불러 선배와 셋이 탁자를 엘리베이터에 실었다. 집으로 들이지는 못하고 일단 복도 한쪽에 놔두었다. 내일 남편이 물으면 능청스레 옆집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남편이 출근하고 없는 시간, 집 근처에서 목공업을 하는 지인에게 연락해 볼까 싶다. 나무와 오래 사귄 그를 믿어 볼 참이다. 생업으로 나무를 다듬은 세월만 보아도 그는 이미 장인의 계열에 섰다.


그조차도 고개를 흔들면, 폐기물 스티커를 다시 붙여 원래 자리에 갖다 놓아야지. 그러자니 벌써 마음이 서글프다. 사람도 아닌 사물에 혼이 나가 동동 거리며 마음이 온통 흔들렸으니 말이다. 달이 뜨는 밤에는 산책도 나가지 말아야 하나 고민 깊은 밤, 제발 이번에는 나도 남편도 흡족해할 만한 재활용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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