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나태주 시집, 열림원
50쪽 이를 닦다가
자기가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자
자기가 새 거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깨진 거울이라고 생각해보자
자기가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실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자
자기가 집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집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자
세상이 대번에 달라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욱 사랑스럽고
자기까지 불쌍해져 눈물 글썽여질 것이다
---아파 보니 살아 있음이 감사하고 숨 쉬고 있음이 감사하고 눈 뜨는 아침이 감사하고 걸어 다니는 일상이 감사하다. 없는 것을 가지려고 애쓰지 않고 갖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날마다 헤아려볼 수 있음이 감사하다. 곁에 있는 가족이 감사하고, 형제자매와 부모님이 계셔서 감사하고 일할 수 있음이 감사하고 열심히 벌어 쓸 수 있음이 감사하다. 세상에 하나도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다.
85쪽 버스정류장
검은 눈썹 초승달 눈썹 아래
역시나 검고 기인 속눈썹
핸드폰 골똘히 들여다보며
깜짝깜짝 놀란 듯 열렸다
닫힐 때마다 우주가 한 번씩
열렸다 닫히기도 한다
저는 모르리
제가 우주 자체이고
제가 우주를 속눈썹으로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을
어여뻐라 저 자신도 모르는
어여쁨이여 미지의 처녀여
-----눈썹을 깜박일 때마다 우주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우리는 모두 살아 있는 자체가 능력자다. 현상을 바라보는 긍정의 사고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그 마음에 충만함을 가져다준다. 시 한 편을 읽을 때 마음에 펼쳐지는 풍경은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그 풍경을 한 낱말로 표현해 본다면 그것은 바로 행복이다.
114쪽 사랑은 그런 것
예쁘면 얼마나 예쁘겠나
때로는 나도 내가
예쁘지 않은데
좋으면 얼마나 좋겠나
때로는 나도 내가
좋지 않은데
그만큼 예쁘면 됐지
그만큼 좋으면 됐지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조금 예뻐도 많이
예쁘다 여겨주면
많이 예뻐지고
조금 좋아도 많이
좋다고 생각하면
많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겠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의 시다. 날마다 좋은 말을 하고 살면 나도 행복하고 상대방도 행복하다. 나쁜 말은 흘려듣고, 전하지도 말고, 남의 흉은 말하지 않으면 된다. 언어가 기쁘면 생각도 기쁘고 행동도 기쁘고 삶도 기쁘다.
132쪽 어린 벗에게
그렇게 너무 많이
안 예뻐도 된다
그렇게 꼭 잘하려고만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모습 그대로 너는
충분히 예쁘고
가끔은 실수하고 서툴러도 너는
사랑스런 사람이란다
지금 그대로 너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라
지금 모습 그래도 있어도
너는 가득하고 좋은 사람이란다
----- 이 시를 읽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져서, 그냥 좋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있어서, 사랑해 주어서 행복하다.
134쪽 떠난 자취
너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느냐
어느 구름 아래 어느 바람 따라
흐르고 있느냐
이쪽에서 좋았던 일
섭섭했던 일 모두
마음속으로 접고
너 가고 싶은 곳으로 가거라
너 좋은 곳으로 가서
너 좋은 사람들 만나
내일도 오늘처럼 잘 살아라
해 으스름 고개 숙인
꽃나무를 보면서 말한다
그늘에 덮여가고 있는
산을 보고 말한다
-----얼마 전, 아버지를 멀리 떠나보낸 지인이 생각났다. 끝과 끝인 것 같던 삶과 죽음이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결국에는 친구처럼 반갑게 맞이해도 좋을 만큼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나 싶은. 요즘은 삶에 대한 생각보다 나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잘 죽기 위해 잘 살아야 하고, 잘 죽을 수 있도록 오늘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140쪽 사랑에게 3
오늘은 편히 쉬어라
어제 힘들었으니
그리고
천천히 가자
가다가 멈추는 자리가
인생이고 집이고
또 사랑이란다
.
.
.
-----지금 나의 삶을 그냥 위로해 주는 시구다. 내가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해 주는 시.
206쪽 강철의 언어 -그리워라 조정권
일찍이 강철의 언어를 가졌던 시인
강철의 언어로
빗방울을 그리고
산을 그리고
꽃을 그리고
나비를 그리고
강물을 그렸던 시인
지극히 오만하였고
지극히 고독하였으며
더불어 아름답기까지 하고
눈부시기도 했던 시인
드디어 자신의 영혼을
산정으로 유폐시켜
춥고도 어두운 무덤에
가두어두고는 도무지
하산하려 하지 않았던 시인
강철 언어에 내상을 입어
피를 흘리기도 했으리
지금은 조금쯤 몸이 풀려서
하늘나라 뜨락 고요한 나무 수플
그늘 밑을 와이셔츠 바람으로
거닐기도 하겠지
그리워라 조정권
누구한테 보다 자신에게
정직했고 엄중했던 시인
다시는 이런 시인
만나기 어려울 것이네
-----조정권, 그의 산정묘지를 좋아한다. 특히 1편을 매우 좋아한다. 겨울산행에서 나는 그의 산정묘지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그를 좋아하게 됐다. 그의 산정묘지는 강철의 언어로 만들어졌다. 운부암 산정의 추억이 발목을 붙잡는 2월, 다시 함께할 시간이 우리에게 올까?
248쪽 세상을 사랑하는 법
세상의 모든 것들은
바라보아주는 사람의 것이다
바라보는 사람이 주인이다
나아가 생각해주는 사람의 것이며
사랑해주는 사람의 것이다
어느 날 한 나무를 정하여 정성껏
그 나무를 바라보라
그러면 그 나무도 당신을 바라볼 것이며
점점 당신의 것이 될 것이다
아니다, 그 나무가 당신을
사랑해주기 시작할 것이다
더 넓게 눈을 열어 강물을 바라보라
산을 바라보고 들을 바라보라
나아가 그들을 가슴에 품어보라
그러면 그 모든 것들이 당신의 것이 될 것이며
당신을 생각해주고
당신을 사랑해줄 것이다
오늘 저녁 어둠이 찾아오면 밤하늘의 별들을 우러러보라
나아가 하나의 별에게 눈을 모으고
오래 그 별을 생각해보고 그리워해보라
그러면 그 별도 당신을 바라보기 시작할 것이며
당신을 생각해줄 것이며
드디어 당신을 사랑해줄 것이다
---메리 올리버의 시가 생각나는 나태주의 시다. 자연 예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다. 아름답다. 삶에 염증이 나거나 지루할 때 자연욕을 하고 나면 어느새 나는 즐거워지고 다시 살고 싶은 생각이 가득해진다. 자연의 힘은 위대하다.
-----시들을 읽으며 한 문장 한 문장에 젖은 내 마음을 걸어 말렸다. 눅눅한 내 마음을 널었다. 어떤 언어들은 따뜻해서 젖은 내 마음을 말려 주고 언 마음을 녹여 주었다.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게 하고 인정하게 하는 책,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는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