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부엌

김지혜, 팩토리나인

by 글똥

팩토리나인의 책들을 읽는다. 어쩌다 손에 잡힌 책, 그리고 놓을 수 없었던 책. 녹이 슬어 끼이익거리던 나의 지금에 윤활유가 되어 준 스토리. 민음사 시리즈의 작은 글씨에 무기력해지던 찰나, 매카시의 시리즈에 막 싫증이 나던 찰나. 그러나 이 두 가지의 이유도 실은 견디기 힘든 무더운 여름과 조우하였기 때문. 그리고 시끌벅적한 아이들로 지친 나의 모든 7월과 8월 때문.


소양리는 이도우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그 동네와 닮았다. 아니, 나의 어린 시절 시골 풍경 그 자체다. 그래서 한 문장을 읽으면 브로크 담장이 길게 이어진 구석의 풍경까지 너끈히 떠오른다. 햇살 가득한 담장 아래에서 친구들과 공기놀이하는 추억이 나의 기억을 든든히 받쳐준다. 꽁꽁 언 논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옆집 오빠도 소환된다. 어린 시절의 나를 온전히 떠올리게 하는 책, 괴롭고 힘든 현실을 잠시 벗어나 풍요를 맛보는 시간이다. 나는 요즘 그 시간들을 이어가는 중이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지치고 힘들게 하였을까. 조금씩 견디고 참아내던 시간의 한계. 그 한계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 기분이 무엇인지 공감할 것이다. 기특하게도, 나는 지금 나의 시간을 통해 적절한 처방을 찾은 셈이다. 수많은 책 중에서 내게로 온 팩토리나인, 김지혜가 만든 마법의 문장, 마법의 약을 꿀꺽 삼켜 보는 바, 약효가 아주 탁월하다 못해 신비롭다.


유진과 다인, 형준과 시우, 세린과 마리와 지훈의 세계는 소양리 북스 키친과 연결된다. 어느 한 공간이 나의 힐링 스폿이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독서를 통해 나와 같은 세계를 사는 사람을 만나는 경험은 더욱 특별하다. 게다가 내게도 자랑할 만한 클럽이 있기에 <책들의 부엌>은 감히 내 주위의 그들이라고 해도 넘치지 않는다. 지은, 인혜, 정숙, 재연, 용식, 지영, 동희, 혜선, 연정, 은숙, 시원, 경민, 경희 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는 이름이 내 가슴에 한가득이다. 그들과 함께 만들어 먹은 요리는 아마도 <책들의 부엌> 뿐 아니라 <리틀 포레스트>의 풍경에 버금가는 행복한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8월의 책,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더욱 반갑다. 갑자기 우포늪을 다시 방문하고 싶은 충동을 이길 수 없어 장마 중에 나는 그곳을 방문했다. 징검다리를 건너 늪의 깊숙한 곳으로 몸을 들였던 십여 년 전의 새벽 가을이 아직도 생생한 이유는 추억이 우리의 기억을 지탱해 준다는 어느 소설가의 말로 대신한다. 작년, 우포늪이 내 삶에서 조금씩 잊혀 갈 때 나는 습지에 사는 카야의 삶을 들여다보며 내면의 고독과 외로움을 달래주는 힘을 얻었다. 현실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풍경과 색깔과 사건과 대화는 종종 나를 그곳으로 초대한다. 기억의 저편에 숨어 있던 과거의 한 퍼즐이 불쑥 튀어나와 비어있는 삶의 조각을 맞춘다. <책들의 부엌>이 소개하는 책들은 대체로 내게 그런 퍼즐 조각이 되어 현재의 빈 틈을 메운다.


<책들의 부엌>에서 건진 레시피들을 주섬주섬 모아 둔다. 입맛이 없을 때 하나씩 꺼내어 요리해 먹어볼 작정이다. 멋진 레시피를 공개해 준 김지혜 작가님께 최고의 식당 미슐랭 3 스타를 선물한다.



♤ 책들의 부엌 레시피♤


밝은 밤 - 최은영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 고수리

파친코 - 이민진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 마쓰이에 마사시

하나레이 해변 - 무라카미 하루키

그 겨울의 일주일 - 메이브 빈치

츠바키 문구점 - 오가와 이토

오즈의 마법사 - 프랭크 바움

앵무새 죽이기 - 하퍼 리

빨강 머리 앤 - 루시 모드 몽고메리

어린 왕자 - 생텍쥐페리

가재가 노래하는 곳 - 델리아 오언스

다정소감 - 김혼비

힘 빼기 기술 - 김하나

호호호 - 윤가은

꽈배기의 맛 - 최민석

꽈배기의 멋 - 최민석

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 무라카미 하루키

나비 - 에쿠니 가오리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김영민

더글라스 케네디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