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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무늬

by 글똥

지난여름은 뜨거웠다. 그래서일까. 태양의 무늬들은 10월이 되어서야 사라졌다. 8월의 한낮이 남긴 문신은 손등과 손목 그리고 발등과 발목 사이에 선연했다. 해운대의 태양은 광선이 되어 나의 피부를 불태웠다. 나는 그 무늬가 싫지 않았다. 가끔 들여다보며 "하이, 나의 여름. 태양의 무늬들"이라 부르며 인사를 나누었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았다. 화장이 귀찮아 선크림도 마다하였던 얼굴에 기미가 짙다. 평면의 얼굴이 더욱 난처해졌다. 하루, 공을 들여 화장을 했다. 미스트를 대충 뿌리고 수분 크림을 덧발랐다. 선크림은 생략, 콤팩트로 광대뼈에 도드라진 기미를 집중공략했다. 밝은 전등 아래 더욱 빛나는 기미들. 두텁게 칠할수록 깊어지는 주름. 주름과 기미 중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시간이다.


십 수년을 고수한 헤어스타일을 바꿨다. 불현듯, 갑자기 그러고 싶었다. 멋있다고 생각했던 밀라논나의 헤어스타일과 미용실 잡지에서 만난 김고은의 숏컷이 도화선이 됐다. 원장은 가감 없이 가위손을 휘둘렀다. 역시 즉흥의 실행은 낭패로 이어진다. 나의 낭패는 매일, 어쩔 수 없이 화장을 해야 하는 일이다. 머리에 왁스를 잔뜩 바르고 다시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하는 것이다.


짧아진 머리로 나의 아침은 이전과 달리 분주하다. 5분이면 모든 것이 충분했던 과거는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견디는 것보다 즐기기로 한다. 내 몸에 가장 아름다운 무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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