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지만 엄마입니다 - 2화
나는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엄마라고 믿었다.
장난도 잘 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육아가 조금 익숙해지면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도 점점 커졌고
그만큼 ‘잘해주고 싶다’는 마음도 자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랑이 커질수록 아이와 노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나는 지금, 육태기를 겪고 있다.
아침에 아이가 잠에서 깨어
“엄마, 놀자”라고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말 한마디에 몸을 일으켜 함께 나갔고
그게 당연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아빠 놀자!”라는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아이의 목소리를 들은 나는 이불을 덮고 속으로 외쳤다.
‘야호!’
핸드폰을 뒤적이며 조금 더 누워 있고 싶었다.
내가 그렇게 원하던, 아주 짧은 혼자만의 시간.
언젠가부터 아이는 나보다 아빠를 먼저 찾는다.
엄마가 요즘 놀아주지 않는다는 걸
아이는 이미 알아챘을까.
아이들과 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꺼내기도 전에
몸이 먼저 지쳐버린다.
놀이터에서 숨바꼭질을 하면
아이들은 “다시! 또!”를 외치는데
엄마는 숨이 턱 막히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쌍둥이는 경쟁하듯 “더 빨리!”를 외치고
나는 그 사이에서 속도도, 체력도, 감정도 뒤처진다.
아빠가 아이들과 장난감 놀이를 할 때면
그 틈을 타 나는 도망치듯 커피를 마시고
핸드폰을 보며 마음의 공백을 메운다.
이게 과연 ‘놀기 싫은 엄마’일까
아니면 그냥 ‘조금 쉬고 싶은 사람’일까.
그 경계가 모호한 요즘이다.
요즘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너희끼리 노는 연습을 해보렴.”
그 말에는 ‘엄마가 조금 지쳤다’는 뜻이 숨어 있다.
그런데 다행히도
쌍둥이라서 가능한 말이기도 하다.
서로 의지하며 자라는 아이들 덕분에
나는 가끔, 아주 잠깐씩 도망칠 수 있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늘 에너지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사랑해도, 피곤할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엄마이지만
가끔은 그냥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그건 긴 육아전쟁에서 잠깐의 쉼표일 것이다.